혜산 선생님과의 인연
내가 혜산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한국일보(’62)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였다. 당시 심사위원은 박남수, 박두진 두 분이었다. 사장실에서 다과를 나누며 두 분이 저에게 건넨 한마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혜산 선생이 특히 좋아했다”, “글씨(원고지)가 조악해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는 말씀이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 무렵 선생님께서는 남한강 일대에서 수석을 채집할 때인데 함께 따라가서 탐색하는 요령을 익히고 자주 동행하기도 했다. 80년 말경에 수국시인학교(욕지도 앞의 작은섬)에 참석했다가 두 내외분을 모시고 귀경길에 올랐다. 사천 비행장에서 탑승 전에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동안을 지체한 것이다. 비행기 출발 시간을 몇 분인가 앞두고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일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날 나는 기독교의 문을 두드렸고, 혼자서 인왕산 골짜기에 파묻혀 성경 한 권을 들고 단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처음 누님을 따라 안성 성결교회에 출석하며 예수님을 마음 속에 품었다. 그가 성년이 되면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비극성을 시로 그 울분을 토해낸 지사풍(志士風)의 우국(憂國) 시인이기도 했다.
박두진 시인의 시 세계는 기독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있다. 동시에 시작(詩作)의 영토는 당대 현실 상황이다.
가을꽃
바람에 불리우는 들꽃을 보네 / 하얀 꽃을 보네 / 파아랗게 하늘 바람 땅으로 불고 / 꽃 목처럼 흔들리는 그리움을 보네.
일렁이는 그 추억 그리움의 물굽이 / 당신의 희디 하얀 나비 / 혼자서 노을 저편 바달 향해가는 / 밤 오면 하늘, 바다, / 별이 함빡 난만한 / 그 때 우리 하나의 넋 / 꽃만세를 보네.
‘혼자서 노을 저편 바달 향해 가는’ 환상의, 관념으로 펼쳐 보이는 가을의 서경시(敍景詩)이다.
박두진 시인의 시가 대체로 호흡이 길고 격정적인 데 반해 차분하고 감상적인 정서가 절제된 시이다.
절벽에게
어떻게 당신은 절벽을 올라갈 수 있을까요./얼음 꽝꽝 얼음의 절벽을/올라갈 수가 있을까요./십억 십천 억조 억억의 절대 정정절벽,/푸르디 푸른 당신의 절벽을/올라갈 수가 있을까요./별들이 모여서 올라가다가/그 아래 떨어져 날개로 푸득이고,/햇살도 올라가다가 얼어서 떨어져/그 아래 하얗게 서릿발 프득이고,/바람 윙윙, 바다 윙윙/노을도 무지개도 그 아래 흐느끼고,/우리들의 철학,/이념도 사상도 올라가다가 떨어져/그 아래 날갯짓 얼어서 푸득이고/평화와 자유, 혁명과 야망,/전쟁도 학살도 기어 오르다가 곤두박혀/그 아래 즐펀히 묻어 푸득이고,/꿈, 믿음, 사랑, 혹은울음/어떻게 어디로 올라가야 우리는 비로소/당신의 절벽을 오를 수 있을까요/가슴 속 타오르는 활활한 이 불,/가슴 속 펄럭이는/황홀의 이 깃발,/어떻게 어느 때 당신의 그 절벽/아득하고 영원한 절정에/휘날릴 수가 있을까요.
‘절벽에게’ 도 역시 시적 호흡이 길다. 그는 “사상적 현실주의와 시적 리얼리티는 별개의 것일 수 없으며, 시가 현실에 뿌리박을 수 없는 한, 시의 생명은 고갈될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두진 시인만의 시적 아우라이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