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 본다. 모든 해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고 표현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과의 전쟁, 시리아 내전과 아사드 정권의 몰락, 인공지능(AI) 규제에 대한 글로벌 논의, WHO의 엠폭스(MPOX, 원숭이 두창(痘瘡) 바이러스) 우려, 미국 트럼프의 재등장, 미·중간의 무역 분쟁과 세계 경제 침체 우려 등이 우리를 압박한다. 국내적으로는 의료 분쟁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다. 현재도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환자들의 피해만 가중(加重)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일반 서민,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여·야간의 정쟁(政爭)이 격화되고 있다. 불구하고 우리 가정과 나라, 한국 교회를 보호,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12월 3일 밤 22시 23분, 뜬금없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로 새벽 1시 1분 해제되었다. 민주화를 넘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1인당 GDP 3만 달러를 이룬 시대에 계엄령이다. 온 국민이 놀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彈劾)되고 헌법 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는 세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참으로 국가적으로 불행한 정치 퇴행(退行)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수출이 위축되고 있다. 온 국민과 정부가 합심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적 불안과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 신인도(信認度) 추락에 마음을 졸인다. 2024년 우리나라 교회의 통계는 6만여 개의 교회, 교인 수 771만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중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교인 수는 545만 명으로 추정된다. 교회와 정부 간에 해결하지 못하고 올해도 시끄러웠던 문제 중의 하나가 동성애(同性愛)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한다.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과 독일은 이 동성애를 받아들인 후 출석률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동성애 허가는 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마치 연못에 폐수가 흘러들어 오염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년(前年)에는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로 교회가 소란하고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부끄러웠다. 교회의 품격과 전도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올해에는 난데없이 예장 통합 총회장의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나와 충격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이후 갈수록 교인들이 감소 추세인데 할 말을 잃게 한다. 아~! 교회 지도자들이 왜 이러는가! 평신도가 목사님들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 가톨릭의 위기도 바로 사제(司祭)들의 부도덕한 성 윤리와 부패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지도자들의 언행과 윤리적 문제는 항상 있어 왔지만 작금(昨今)에 와서는 더욱 빈번해지고 대형화되고 있다. 국민들이 교회의 부패와 스캔들 소식에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빛을 잃고 소금의 맛을 잃었다.
2023년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 21.0%, 개신교 호감도는 3대 종교 중 가장 낮은 25.3% 였다.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것 중에서 ‘한국 교회가 신뢰도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 삶이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것이 50.2%로 나왔다.(2022년)
본 회퍼(D Bon Hoeffer, 1906~1945) 목사님의 말이다. “교회는 시대의 짐을 지라.” 한국 교회가 새겨 들어야 할 경구(驚句)이다. 일반 교인들 중에는 어렵게 사는 분들, 눈물을 닦아 줘야 할 교인들이 많다. 한국 사회는 교회의 지도와 조언이 필요하다. 침묵이 미덕(美德)만은 아니다. 이들을 위로하고 도와야 한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을 들어야 한다. 핵심 교리는 변함없이 지켜내면서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지난 가난한 세월 속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찬송하며 오늘의 현실에 참회하는 눈물을 쏟아야 한다. 통곡(痛哭)하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