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에서 최초의 송구영신예배는 1887년 12월 31일에 있었다. 당시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목회하던 새문안교회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시무하던 정동제일감리교회가 연합예배를 드린 것이 그 유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날의 예배는 송구영신예배(送舊迎新禮拜)가 아닌 ‘언약갱신예배’(Covenant Service)라는 이름으로 드려졌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복음주의 신학을 배운 보수적인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송구영신예배의 풍습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전통적인 한국 문화와 풍습을 배척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변형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인 지도자들은 송구영신예배를 처음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무속신앙에서의 ‘하늘님’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가히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금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금주가>라는 노래가 찬송가에 수록되는 것을 허용했다.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습관을 인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토착 종교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인 기도(祈禱), 축도(祝禱), 축복(祝福), 천당(天堂), 지옥(地獄), 제단(祭壇), 제물(祭物), 신(神) 등을 기독교 용어로 의미 전환해 사용했다. 또한 동양 종교의 정적(靜的)인 요소가 묵도(黙禱)라는 이름으로 예배의 시작 부분에 도입되어 미국교회에서는 없는 한국교회만의 독특한 예배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는 한국 문화와 기독교를 접목시키려는 노력의 열매였고, 한국의 전통적인 신앙을 기독교의 믿음으로 승화시켜 가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보수적인 교리적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 더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독교적으로 변혁시키면서 민족종교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 결과 기독교는 삼일운동이라는 민족적 거사를 주도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 신앙이다.
한국교회는 송구영신예배(送舊迎新禮拜)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로 12월 31일에 드리고 있다. 이 송구영신예배를 무속적인 요소가 기독교에 들어온 것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보였던 기독교와 한국 문화의 융합적 접근은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