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한국장로신문 빛낸 유호귀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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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출신 유호귀 장로는 명문 양정고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ROTC 장교 1기로 군복무도 마쳤다. 대학 재학 중에 4.19 대열에 열렬히 참여해 4.19 민주 자유정신이 헌법전문에 오르는데 기여한 애국학도의 하나이다. 이 4.19정신을 망각한 정치풍토는 오늘날 어지럽기만 하다. 성품이 온유 겸손한 유호귀 장로의 사회 첫 출발은 기독공보 편집국장이다. 신속 정확 공정의 신문 사명을 다하며 성실하게 알찬 신문을 발행했다.

유신정권시대 조심스럽게 반체제 인사 안병무 교수의 ‘마지막 잎새’ 글을 기독공보에 발표했다. 이 후유증으로 숭실대로 자리를 옮겨 대학교육에 봉사했다. 재단사무국장을 비롯해 재정부장 홍보부장 출판부장 등의 중책을 잘 수행하고 정년퇴임했다.

통합측 전국장로회연합회 기관지 한국장로신문이 1973년도 7월 31일자로 발간되어 몇 장로와 운영에 힘을 썼으나 난관에 부딪친 김재호 어른 장로님이 유호귀 장로를 초청해 신문발행에 협력을 부탁했다. 기독공보 평신도신문 등의 편집국장 경력을 가진 유호귀 장로는 기울어 가던 한국장로신문을 바로잡아 놓았다. 신문의 내용과 지면 확장을 획기적으로 새롭게 해가며 교단의 장로연합회 기관지로 나중에는 초교파적으로 신문을 부흥발전시켰다. 90세가 넘게 장수하시고 하늘나라 가신 이흥순, 김건철 장로님의 큰 후원을 받아가며 재정적으로도 흑자를 이뤘다. 한국장로신문사는 전남광주지사장 마정선 장로를 비롯해 모두 19개의 지방에 지사가 조직되어 있다. 유호귀 장로는 기획적으로 내용을 성령충만하게 개척하고 지면을 20면으로 확대하고 사설, 시론, 인물소개, 역사적 기록, 제언 등 다양한 글을 목사, 장로 필진이 쓰게 해 야긴과 보아스처럼 목사, 장로 상호협력 화합에 크게 이바지했다. 기도와 믿음으로 교단이 하나되고 문서선교의 세계적 활동 자료가 되게 했다. 수필가로 제8대 한국장로문인협회 회장 연세대장로회 4대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장로신문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바른길 바른붓 신문으로 지난해 7월 31일 신문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벌이며 신문 임원 이사들과 함께 신문발전에 더욱 굳센 다짐을 했다. 유호귀 장로는 사장 편집인 이름으로 2024년 11월 16일자로 제1895호까지 신문을 발행했다. 이사장 박영호, 명예이사장 홍성언, 부이사장 길근섭, 박화섭, 발행인 박래창, 명예사장 이승택 그 밑에 사장겸 편집인 유호귀 장로 이름이 있었다.

정로의 정론, 파수꾼의 임무, 정확한 나팔수 이 3대 한국장로신문 사시를 잘 지켜가며 유호귀 장로는 만 24년 7개월 약 25년간 한국장로신문 제작 발행에 온 땀과 힘을 쏟은 공로가 혁혁하다. 통합측 교단 김영걸 총회장은 창세기 12:1-2 인용 ‘창대하리니’ 설교를 했다. 한국장로신문 12대 사장을 이어 받은 이승철 장로는 그간 서기이사, 감사, 이사장을 역임하고 12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잠언 16장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에 의지하며 몸으로 헌신해 신문 발행을 하겠다고 했다. 하나님 축복이 크리라 믿는다.

유호귀 장로가 설정한 고정란에 2024년 12월 23일 현재 문성모 목사의 ‘신앙과 지혜’ 912회, 김형태 장로의 ‘장로들의 생활신앙’ 878회, 그리고 오동춘, 박이도, 최석산, 하재준, 박래창, 이승하, 김광식, 조인형, 양한석 장로, 김순권, 유해근, 김선태 목사, 오경자 권사 등의 고정칼럼이 신문 지면을 빛내고 있다. 유호귀 장로는 데스크창 칼럼모음집 ‘힘차게 기지개를’ ‘야긴과 보아스처럼’ 두 권을 펴냈다. 유호귀 장로의 한국장로신문사 봉사 25년 공로에 우리 모두 감사의 뜻과 함께 하나님 축복이 크리라 믿는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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