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뱀같이 지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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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능을 두 가지로 크게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영성적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예언자적 기능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영성적 기능을 가진 영성적 종교이며 동시에 예언자적 기능을 가진 예언자적 종교라고 한다. 영성적 기능이란 영혼을 구원하는 기능이며, 예언자적 기능이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는 기능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교회는 영성적 기능에 충실해 교회 역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예언자적 기능에 소홀했다는 자책감을 지울 수 없다. 최근에 와서 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는다. 이것은 교회가 사회를 외면한 결과로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는 자업자득의 소리이다.

교회는 사회적 기관이다. 사회 즉 이 세상은 교회의 못자리이다. 세상이 없이는 교회의 존재이유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 안의 기관, 사회를 위한 기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를 품어야 하며, 사회를 유익하게 해야 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히브리서 13:13에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한다. 교회는 성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빈손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inside) 말씀을 담고, 나가서(out) 말씀을 뿌려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며,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상을 능가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거룩한 기관인 교회가 세속적 기관인 정부나 사회기관보다 뛰어난 영성과 탁월한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영성적 권위와 품위를 가질 때 세상은 교회를 인정하고 우러러보며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세상을 향한 경고의 소리를 낼 때에도 합리성과 설득력이 있어야 허공을 치는 소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사회는 최첨단 과학시대이다. 지식과 과학기술의 첨단화로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자랑하는 로봇이나 AI의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의 발전에 비해 지혜는 퇴보하고 영성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때에 교회는 영성적 기관으로서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며 지혜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지혜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살아가는 기술’이란 뜻이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인데 말씀을 외면하므로 세상의 살아가는 기술은 지혜가 아니라 꾀가 되고 말았다. 참지혜는 용기와 만나며, 지혜 있는 용기가 용기이다. 용기 없는 지혜는 꾀이다. 용기 있는 지혜가 지혜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용기가 없으며 지혜는 없이 꾀만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식은 말하고, 지혜는 듣는다고 한다. 고대 수메르어에서는 귀와 지혜는 동의어였다. 참지혜는 귀가 열린 자에게 찾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린 자에게 머문다. 지혜는 입이 아니라 귀에 머무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을 ‘훗헴’이라고 한다. 훗헴은 평생 배우고 게으르지 않으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항상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며, 지혜가 있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로 국가의 방향이 흔들리고 혼돈의 정치에 민심마저 공황에 빠진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향한 광야의 소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 정치, 국가와 사회를 섬기며 진리의 보루가 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큰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를 맞이했다. 예수님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다. 자칫 국내외적으로 혼란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이 필요하다. 지혜와 순결은 교회와 국가를 살리기 위해 ‘훗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새해 선물이다.

이성희 목사

<증경총회장,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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