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믿음의 지혜로 살아가는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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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 붙여 –

새해는 서력(西曆)으로는 2025년, 음력(陰曆)으로는 을사년(乙巳年) 뱀띠해이다. 예부터 뱀띠해에 출생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 옛날 백의 민족의 광대무변(廣大無邊) 한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지혜를 다시 모으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을사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 민족의 국치(國恥)인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시초인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을 상기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이야기이다. 

1905년 11월 17일 조선조 광무(고종) 9년에 일본으로부터 외교권(外交權)을 박탈(剝奪) 당하는 수모(受侮)를 당한 해이다. 이로부터 조선은 36년이라는 길고도 긴 세월 일본의 속국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유리방황(流離彷徨)을 하며 살았다. 미국 덕분에 해방은 되었으나 그것도 잠시일 뿐 민족은 좌우익으로 분단되어 민족은 또다시 치욕의 역사가 연속되고 있다. 

조선왕조의 무능으로 시작된 민족의 서러움은 일제의 압박을 피해 상해로 만주로 러시아로 카자흐스탄 등지로 유랑걸식을 하던 옛날들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을사년이 이 시대에게 주는 경각심이다. 

남북이 분단된 동기 역시 일제잔재의 유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의 검은 속셈으로 신탁통치 배경으로 이북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칸트 철학의 주류는 첫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이성(理性)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이고 둘째는 이상을 추구하는 실천에 인간의 자유의 소질(素質)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성의 무한한 실천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따라서 새해 2025년도는 여러모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한 해라 하겠다. 120년 전에 있었던 을사보호조약이 오늘 우리에게 심어야 할 진귀한 철학은 인간이라는 동의어로 분석하면 이율배반이라는 양면적 인간의 자율적 이성에서 검토해야 할 숙제일 것이고 칸트 철학의 본질보다 더 심도 깊게 달궈야 할 의제(議題)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새해를 맞아 숙고해야 할 믿음의 형제들에게는 양질의 인류공통의 언어로 수리(修理)해야 할 문화의 윤리(倫理)를 상고(相考)토록 권유하는 사설이라 하겠다. 그리고 필자가 직설(直說)을 피하고 공통분모 속에 숨겨 있는 분자만을 헤적인 것은 뱀띠해의 지혜로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한 해를 잘 살아가길 원해서이다. 

서양속담에 가시 없는 장미가 없다(no rose without thorn)고 했다. 아름답고 눈을 끄는 것은 반드시 그 내면에 사람을 해치는 독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사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 중에 이 땅의 사람들 특별히 믿음의 권속들은 이 한 해 동안 나를 중심으로 살지 말고 우리들의 중심 속에 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은 신을 발견한 지혜일 것이다. 인류가 독불장군이라는 북소리는 스스로 무너지는 소리일 뿐이다. 종교철학자가 아니라도 기독교철학이 심금을 울리는 것은 믿음의 지혜로, 신의 음성을 듣는 지혜로 가장 황홀한 메커니즘(mechanism)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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