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보 목사는 지난해 10월 27일 100만 명이 모인 기독교 집회의 주역이었다. 집회 장소는 그의 이름으로 허락되었고, 모든 책임은 그가 져야 했다. 그는 부산에서 수십 대의 버스를 대절해서 교인들을 집회 장소로 오게 했다. 그날의 집회 인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인파가 운집한 것에 대해,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무되었다. 그도 놀랐고, 교회 지도자들도 예상 밖의 결과에 흥분되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예배와 기타 순서에 수십 명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저마다의 항변으로 동성애를 반대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저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대회가 성공해 이 나라에 동성애가 사라지고 창조 질서에 역행하는 악법이 저지되는 것만을 원했다. 손현보 목사는 대회를 위해 가장 돈을 많이 썼고, 노력도 많이 했고, 피눈물 나는 절박한 기도 시간을 가졌지만, 그뿐이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결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했다.
이는 지금까지 없었던 개혁자의 모습이었다. 교계의 관행과 부패한 교회의 습관에 대한 무언의 혁명이었다. 손현보 목사 이전까지 교계의 관행은 무엇이었나? 돈을 낸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 것이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낸 사람이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돈과 노력과 영향력에 따라 단상의 자리가 지정되었고, 마이크를 잡는 시간도 달라졌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는 달랐다. 지난 10월 27일 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100만 명이 모인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손현보라는 인물이 만들어 낸 개혁이다.
그 대회를 통해 교계의 스타가 된 사람도 있고, 자신의 주가를 한층 높인 인물도 있다. 어쩌면 나오지 않아도 될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감정 컨트롤에 실패해 역효과를 낸 경우도 있다. 대회의 목적 달성과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에게 어떤 순서 부탁이 와도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적임자입니다. 나는 적극적으로 돕고 섬기기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손현보 목사가 보인 개혁적 마인드가 교계의 상식이 될 수 있을까? 한국에 제2, 제3의 손현보가 나와 교계에 만연된 황금만능주의와 부패하고 역겨운 관행이 개혁될 수 있을까?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