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다.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했다. 당시 유대인들의 시간 기준은 오후 6시를 0시로 생각했다.
그래서 성경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시간으로 계산하면 이른 아침은 오전 6시, 제3시는 오전 9시, 제6시는 낮 12시, 제9시는 오후 3시, 제11시는 오후 5시이다. 그리고 제12시는 오후 6시 즉 0시이다.
포도원 주인은 우리 시간으로 오전 6시,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 나가서 포도원의 품꾼을 데려왔다. 그리고 오후 6시에 하루 일을 마친 품꾼들에게 품삯을 주었다. 나중에 온 자(오후 5시)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맨 늦게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자 먼저 온 자들은 더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은 오후 5시에 온 자와 똑같이 먼저 온 자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았는데 맨 늦게 온 자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자 불평을 했다. 나중에 온 자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준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평에 대한 주인의 대답은 나는 너희와 약속한 대로 주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먼저 온 너희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다. 나는 내 뜻대로 했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나를 악하다고 보느냐?
물론 이 비유는 천국에 대한 비유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젊었을 때 이 말씀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 있다. 공평하지 않다.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 똑같은 품삯을 준다는 말인가!
필자는 왜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잘못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이 필자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 속에는 필자의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른 아침에 온 품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교만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오후 5시에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오후 5시에 온 품꾼인데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너무 감사하다.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 똑같은 품값을 준다는 말인가!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게 되었다. 오후 5시에 온 나에게도 한 데나리온의 품값을 주다니 너무 감사할 뿐이다!
오후 5시에 온 품꾼의 마음으로 목회하고 싶다. 부족한 사람이 목사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최태순 목사
<대천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