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를 나가게 된 해는 정확히 말해서 고향의 회남국민학교를 졸업하고 2년쯤 뒤인 1958년의 늦가을인 11월쯤이었다.
어떤 기대감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교회 안으로 입실하니 한 사십여 명쯤 되는 신도들이 다들 조용한 가운데 성경책을 보며 일부는 신도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워낙 작은 마을이고 신자들이 적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꺼번에 예배를 보고 성경공부를 하는 터라 가족 같은 안온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회 중앙에 위치한 십자가는 내게 너무나 크게 각인되어 왔고 그 어떤 편안함과 안정감으로 마치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 더욱 친숙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교회를 나가면서부터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들이 뒤돌아봐지고 사람들을 보는 눈이 점차 새로운 면모로 달라져갔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말씀을 듣고 해석하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게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신기하고 신비한 하나의 꿈속처럼 신세계를 조금씩 열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들으며 처음 느낀 것이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매사에 감사하며 살자는 마음이었다. 오늘 하루를 뜻있게 보내고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감사하며 반성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과 그리고 아주 작은 일, 사소한 것에서라도 나의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오는 게 아닌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어느 정도 교회생활이 익숙해지자 이제는 주일이 기다려졌다. 더구나 또래들과는 교회를 매개체로 더욱 친숙해져서 좋았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가 되고 서로의 화합이 유불리를 떠나 하나의 생각으로 정화되고 그 안에 인간의 생존의 가치관과 함께하는 마음이 공존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하나의 형제처럼 생각이 되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생활은 어느덧 내가 고향을 떠나 부산에 영주하고 난 뒤부터 나의 인생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제3항만 사령부로 군복무 명령을 받고 주일이면 다니던 새마을교회(나중에 문현중앙교회로 바뀜)에 적을 두고 꾸준한 신도생활과 남들보다 더 집중하는 성령공부, 그리고 교우들과의 돈독한 우정들이 많은 신도들의 공감과 이해를 구했는지 1978년 늦가을 서른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장로에 선임되는 영광을 안았다.
물론 교회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심과 봉사 등이 한 몫 했음은 물론일 것이다. 기쁨도 잠시 더욱 큰 직무와 무거운 책무로 조금은 힘들었지만 교우와 신도들의 모범이 되고 교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 되고, 더욱 성령공부를 충실히 해서 딴에는 장로란 위상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 나를 가꾸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평일에도 밤이면 훌륭한 목사님들의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구절에 밑줄을 쳐가며 뜻을 구하고 암기하며 메모로 나만의 독특한 공부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기독교리를 탐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 시대가 내가 가장 기독교의 교리와 현실의 삶,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몰두하며 스스로의 모든 힘을 다해 기독교의 모든 공부를 높고 뜻있는 이상과 생활을 접목시킨 때였다. 그리고 2002년 ‘기독교 부산방송국 운영부위원장’과 나에게는 참으로 과분할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을 2007년에 위촉되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진실된 마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기독교의 신앙 안에서 나를 찾고 남을 보살피며 새로운 신도들을 지성으로 안내하며 많은 분들의 동참을 구하는 것이 나의 남은 인생의 할 일이라고 굳게 믿은 것이 기독교의 교인들이 인정한 몫의 답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이어 2008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부산노회장’ 취임과 그동안의 교회를 위한 노력과 열정, 신도확장으로 솔선한 여러 봉사 활동으로 많은 신도들의 추천으로 2008년 11월에 ‘예장 300만 성도 운동 부산·울산·경남본부장’에 위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9년 10월 13일에는 그동안 나의 한 세월과 나의 정신 뜻과 신앙심이 함께했던 문현중앙교회에서 많은 교우들이 감명 깊게 지켜보는 가운데 장로 임직 30년 기념패를 노회장에게서 받는 것으로 그동안 교회를 위한 봉사와 헌신, 그리고 많은 성도들과 함께 했던 보람된 임무와 책무의 33년 현장에서 벗어나 명예장로로 안착하게 되었다. 참으로 온갖 생각과 회상이 교차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나는 많은 신도들의 박수와 축하, 그리고 감사의 예를 받는 자리에서 처음의 나를 주님이 이끌어주신 1958년 11월 10일 보은의 회남교회에 출석할 때의 그 감격과 감회를 생각하며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살아가면서 힘들 때와 고난과 고통, 생활 속의 시련과 나만의 인생을 소중히 가꾸는 속에서 늘 주님의 배려와 능력이 내게는 큰 힘과 구원의 손길이었다. 때로는 기도로 현재와 미래를 빌었고 힘든 시기에 용기와 보다 큰 능력을 주십사고 주님께 갈구했으며, 나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주님의 뜻과 은총으로 한 세월 한세상을 이끌어 주십사 하는 간절한 소원과, 그리고 지금의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늘 감사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2013년에 이르러 ‘부산광역시 기독교장로총연합회 공동회장’과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을 맡기에 이르렀다. 단언컨대 종교의 믿음은 어떤 마력이나 심취로서 어느 날 갑자기 자기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에 잠재한 모든 것의 정신 안에서 내재된 의식 안에서 스스로의 마음 안에 위안과 은혜로 하나의 깨달음의 순환적 원리로 복 원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은 자신의 깊고 높은 정신 안에서 생성되고 순응되고 또한 용해되는 영혼의 일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기독교인으로서 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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