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여정] 봄이 오는 길목에서

Google+ LinkedIn Katalk +

봄비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연이틀째 내리고 있다. 숲과 나무들이 한결 청정해져 윤기가 도는 것 같이 푸르름을 한껏 뽐내고 있다.

봄비는 우선 식물들의 생장을 돕고 꽃들의 속살을 틔운다고 꽃비라 하기도 하고 절기와 분위기에 맞게끔 조용히 내린다고 해서 보슬비라고도 한다.

봄비가 창밖으로 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먼 그리움 같은 정취에 젖게 된다. 현재의 모든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듯 가만가만히 그 옛날의 못 잊을 밀어를 들려주듯 주위의 그 어떤 풍경과도 어울리는 것이 여간 조화롭지 않다.

모든 나무들과 숲들에게 자양분이 되고 곡식과 유실수에게도 촉매제 역할을 하는 봄비가 내릴 때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명상에 잠기고 싶은 생각과 무작정 자연과 어울리며 현재를 잊고 한없이 거닐고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왜 그럴까. 겨울 뒤에 오는 봄비는 한해의 풍요한 결실과 수확을 알리는 전조 같은 역할과 넉넉함을 함께 주는 어떤 여유로움 때문이리라.

오늘도 산과 바다가 함께 보이는 아파트에서 삼월의 봄비를 본다. 일기예보에서는 전국에서 동시에 내리는 봄비라고 한다.

곳에 따라 위치나 영역에 따라 내리는 다양한 봄비는 보는 사람들마다 생각과 뜻을 달리 하겠지만 우선 감성과 심성으로만 본다면 수줍은 듯 우울하게만 내리는 저 비는 어디서 어떤 또 다른 사연을 만 들어낼 것인가. 영화 속에서나 문학작품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각기 다른 내용을 이루어낸 오늘의 봄비를 보며 회상에 젖어본다.

언젠가 동호인들과의 산행에서 마침 예고에도 없는 봄비를 만난 적이 있다. 일정을 서둘러 취소하고 바삐 하산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언뜻 바라본 산경 사이의 오솔길로 연인인 듯한 한 쌍의 남녀가 봄비를 즐기기라도 하듯 우의나 우산도 없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지 않은가.

새들도 둥지를 찾아 떠나는 시각,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내리는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먼 길을 동행하듯 거니는 것이 그렇게도 여유롭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오래도록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의 산오름길 정도까지 내려오니 마침내 내리는 봄비를 맞아 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밭이랑과 비탈진 농토마다 갖가지 농기구로 농작물을 돌보랴 일부는 새로운 씨앗을 심으랴 경황없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감격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때와 시기가 있다. 그분들은 봄비를 맞아 농작물에 관한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적기에 처리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식구가 동원이 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는 것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 등산 동호인과 마침내 하산을 완료했을 때, 그 을씨년스런 봄비를 잔뜩 맞으며 거의 팔순이나 됨직한 노파가 수레로 파지와 깡통과 종이 상자 등을 주우며 힘겹게 거리를 헤매는 것을 보 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리 사람들은 왜들 다 공평하지 못한가, 왜 행복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가, 삶과 생활의 이유와 근거가 이처럼 다른가. 오늘 우리는 하나의 여유로 건강과 취미로 혹은 내일의 또 다른 일을 하기 위한 마음과 정신의 충전으로 산행을 감행했고, 아까 하산하면서 이 봄비를 기회로 활용하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동원되어 비를 맞으며 삶을 지탱하기 위한 농부들의 애타는 심정의 또 다른 삶의 현장을 목격했으며, 다시 하산을 완료했을 때는 팔순이 됨직한 힘겨운 노파의 처절한 노동을 목격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독거노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니면 그 노구를 이끌고 그렇게 비를 맞으며 종일 고물을 줍겠는가. 조용하게 그윽하게 내리는 봄비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가 삶의 질 속에 축적되어 있는 것을 느끼는 하루이기도 했다.

양한석 장로와 부인 김광자 권사.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