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겠다”
아내는 내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같은 교회에 다니던 교우다. 아내가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처음 교회에 들어오던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 아내와 처제는 노란색 코트를 입은, 얼굴이 하얗고 인형같이 예쁜 모습이었다. 아내는 장충동에 살다가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을 받으면서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 밑에서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아내의 어머니가 분가한 후 두 딸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개척 교회에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부 봉사나 주일학교 봉사도 함께하게 되었고 가끔 집에도 놀러 가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관계는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아내가 이성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서로의 가정환경과 형편이 워낙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내게 교우 이상의 존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이어 주시기 위해 또 하나의 사건을 예비해 두셨다. 이성에 관심이 없던 아내가 처음으로 형제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고 아내는 바로 “믿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라며 단호하게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마침 나도 신앙 문제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자 아내는 나를 달리 보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내는 나에게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경외하자, 나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나의 입대로 헤어져야만 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믿음 안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엮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격려해 주었다. 아내가 보내 준 정성 어린 편지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성경 말씀으로 채워진 사랑의 편지들이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신앙 때문에 겪는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아내의 부모님께 우리가 믿음 안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교제하고 있으며 제대 후에 결혼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고, 휴가를 나오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말고 교회 안에서 좋은 친구로 만나라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우리 집안 사정을 다 알고 계셨고, 내가 앞으로 신학의 길을 갈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보이시는 게 당연했다. 아마 다른 집이었다면 교제조차 허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 딸이었다면 나 역시 거세게 반대했을 것이다. 결혼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어도 인품이 좋으시고 소박하신 분들이라 나에게 한결같이 잘해 주셨다. 아내는 가족들이 나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데도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