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집안에 물건들도 창문도 삐거덕거리는 것이 많아졌다. 자녀들은 새것으로 바꾸라고 하지만 선뜻 마음이 이동하지는 않고 생각해 보니 헌것이라고 꼭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손때 묻은 추억 속에 잔상들이 담겨져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흔히 음식 생활에서도 느껴보는 것이지만 항상 먹어주는 된장찌개나 칼국수 따위에는 갓 담근 겉절이 새 김치가 좋지만, 김치찌개에는 묵은 김치가 제맛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젊은이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경륜은 오랜 세월 속에 엮어진 놀라운 힘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새것과 헌것으로 좋다고 나쁘다고 구분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새것만을 주장하는 지상주의에 빠져서 문제이다. 개인이 소지하는 휴대폰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돌아서면 새것이 나타나서 그 새것도 금세 또 밀려난다. 사람들도 이제는 따라서 세대교차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만능이 아니다.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보면 얼룩무늬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과 같이 탑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 서로를 짓밟는 처절한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런데 노란 애벌레를 와중에 만났다. 둘은 탑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사랑에 깊이 빠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자 얼룩무늬 애벌레는 다시 탑에 오르고 싶어 한다. 노란 애벌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얼룩무늬 애벌레는 노란 애벌레의 만류를 뿌리치고 탑을 향해 다시금 길을 나선다.
그토록 사랑했던 얼룩무늬 애벌레를 떠나보낸 노란 애벌레는 번데기를 만나 나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애벌레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으로 망설이다가 고심 끝에 나비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벌레로만 머물러 있으면 나뭇잎만 갉아 먹는 존재로 남아 있을 뿐이나 나비가 되면 꽃가루를 옮겨주어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로구나. 이처럼 신은 우리에게 새것이 헌것으로 소멸하는 대신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은혜까지 주신 것이다. 참으로 천지창조 만물의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낡은 틀에서 이제는 탈바꿈해 새해에는 나보다는 상대방 이웃에 관심을 더 가지고 소망과 희망의 씨를 날려 보내는 한 마리 나비를 마음속에 품고 감사함으로, 나눔의 아름다움을 가지는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바탕을 신의 가호 안에서 꿈을 살리며,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간직함이 새것이 되는 꿈을 가지고 살다 가면 좋겠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