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신비가 작용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의사로부터 위암이라고 판정을 받던 그 전날 밤에 꾼 꿈을 회상해 봤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기도 하고 신(神)의 계시(啓示)와 같기도 한 꿈이었다. 평상시에는 꿈을 꾼 일이 별로 없었던 터라서인지 유독 그날의 꿈은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요즘 나는 몸이 자주 피곤함을 느껴 그날은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지역인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시간표도 없는 대합실에서 무작정 내가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할 그 무렵인데 가까이서 기적소리를 내며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분주히 플랫폼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아닌 듯해 여전히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옆 사람이 저 차를 타야만 한다며 나를 떠밀지 않는가. 그 바람에 나는 분별없이 일어나 개찰구를 막 빠져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어떤 사람이 내 뒤에서 “여보시오!” 하고 고함을 지르며 “그 차를 타면 안 되오”라고 하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가려는 나의 태도를 보고 그이가 언제 내 곁에 왔는지 급히 내 오른 팔목을 덥석 잡아 이끄는 바람에 그 힘에 끌려나가지 못한 채, 그 기차는 서서히 떠나면서 또 한 번의 기적소리를 힘차게 울리는데 어찌나 큰지 그만 놀라 잠에서 깨고 말았다. 꿈이었다.
꿈을 깨고 난 그날이다. 오전 10시쯤 휴대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제자인 의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선생님, 건강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초기 위암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내시경 수술로도 가능하다고 보이는데 복강수술을 할지라도 간단하게 치료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암을 일찍 발견했기에 퍽 다행입니다. 내원하시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어제 밤의 꿈이 그리도 적중했을까. 내시경으로 시술할 정도라니 최초기(最初期) 암이 아닌가. 만약에 꿈에서 개찰구를 빠져 나갔거나 플랫폼에 이르렀다면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터이거나 아니면 수술과정이 복잡하게 얽히어 많은 고생을 할 게 아닌가. 만일 그 차에 올랐다면 내 생명이 어찌 되었을까.
그 기차는 무엇을 의미하고, 저 기차를 타야만 한다고 나를 충동시켰던 자는 누구며, 고함을 지르며 그 차를 타면 안 된다고 내 팔목을 잡아당겨 끌어낸 사람은 누구인가. 너무도 신비스러운 꿈이었다. 내가 믿는 기독교 용어로 말한다면 전자를 사탄 마귀라고 하고, 후자를 성령 혹은 천사라 말하지 않을까?
일찍이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이미 꿈의 예지적 기능을 부정했다. 그리고 꿈은 과거의 의식들이 무의식의 영역에 남아 있다가 결합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이 이론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일종의 소원성취 형태로 나타난 것이 꿈이라고 보았다. 이 이론이 그간 문학, 철학, 교육학,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면에서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꾼 꿈을 그 이론에 결부시켜 무시하기엔 너무도 아쉽다. 일종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의 발로와는 전혀 다른 꿈이었기에 그날에 꾼 꿈이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