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주일은 매년 1월 셋째 주일로, 1936년 제25회 장로교 총회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이날이 제정되기까지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함께 특별히 두 여성의 헌신과 희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첫 번째 여성은 김마리아 회장입니다. 여성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김마리아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1919년 2.8 독립선언서를 국내에 유입함으로써 3.1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는데 그로 인해 체포 수감 되어 혹독한 옥고를 치르고, 중국 상하이로, 미국으로 망명해 10년 남짓 독립운동과 유학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32년 불혹의 나이에 귀국한 김마리아는, 2년 후 여전도회전국연합회 7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장로교 여전도회 조직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1928년 전국연합회 창립 당시 11개였던 지방연합회는 23개로 확대되었고, 전국 지회수 1만 971곳, 회원수 2만 7천401명으로 대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해외선교 영역을 중국 산동, 남만주, 북만주로 확장하면서 본 교단 총회에 여전도회주일 제정을 위해 여러 차례 청원했습니다.
두 번째 여성은 김순호 선교사입니다. 192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7회 총회가 중국 현지의 필요성에 의해 여성선교사 파송 건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에, 조선예수교장로회 부인전도회(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전신)가 본 교단 총회의 의지에 부응해 1929년 중국 산동 지역에 파송될 여선교사의 선교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여전도회는 중국인 여성들을 가르칠 능력과 자질을 고루 갖춘 이를 천거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기에 모집공고를 내고 신중하게 선정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김순호 전도사였습니다. 1931년 여전도회전국연합회는 김순호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고, 봉급과 여비, 어학연수비까지 총 1천130원의 선교사업비를 모금해 지속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산동 지역은 부양억음(扶陽抑陰)이라는 유가적 문화와 전통 속에 남녀차별관이 강하게 뿌리내린 지역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한족여성들을 대상으로 해방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김순호라는 젊은 여성이 선택된 것입니다. 독신 여성의 몸으로 외국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선교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나고, 김순호는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본 교단 제25회 총회(1936년)가 광주 양림교회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이었던 김마리아와 김순호 선교사가 함께 총회에 참석해 선교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순호 선교사의 선교 보고를 듣고 크게 감동 받은 총회는 매년 1월 셋째주일을 ‘여전도회 주일’로 제정하고, 총회 산하 전국의 교회가 이 특별한 날을 지키며 여전도회원들을 격려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따라서 여전도회 주일은 처음부터 여전도회의 선교정신을 기리고, 교회 전체가 여전도회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날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또한 여전도회주일은 김순호 선교사와 같은 여성선교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김마리아 회장과 같은 여성지도자들의 노력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여전도회주일은 인간 존엄이 상실된 곳에 복음을 전함으로, 인간존엄을 회복하는 선교를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본 교단 총회와 여전도회전국연합회는 김순호 선교사를 중국에 파송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고, 특히 인간 존엄이 상실되었던 한족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귀한 존재라는 존재적 회복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2025년 1월 19일은 이 역사적인 ‘여전도회주일’ 제88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1936년 총대들의 격려의 박수 소리가 2025년 여전도회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이날을 기억해 꼭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