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새해라고 마음을 다잡고 웬만한 일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참아넘기고 덕 있게 살아보리라고 다짐하며 집을 나선다. 예수님을 다 닮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그림자의 흉내라도 내보도록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수없이 다짐하고 또 했다. 교회 앞 지하철에서 노약자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문이 열리자 한 여인이 끌차를 밀고 나오면서 가운데 길을 놓아두고 내 앞으로 밀치듯이 끌차를 밀어붙이면서 거칠게 지나간다. 아니, 무슨 저런 경우가 있나 싶어 울화가 치민다. 저절로 밀고 올라온 기도가 얼마나 고마운지 눈가가 젖어오려 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지. 우측으로 다니게 되어 있으니 그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걸어온 우측 방향이 제 길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내가 잘못한 것이다.
생각이 거기 미치자 애써 마음먹은 새해 다짐이 올무에 걸릴 뻔했다는 생각과 함께 가벼운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하마터면 괜한 사람을 순간적으로나마 몹시 미워하는 올무에 걸릴 뻔 하지 않았던가? 참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순간의 일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를 선과 악의 갈림길에 올려놓는다. 길을 가다가 사람과 잘못해서 부딪힐 때도 내가 실수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인데 상대방의 무례나 잘못으로 돌릴 때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누구나 여러 번 해본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올무에 걸리지 않으려면 내 마음에 양보라는 두 글자가 살아 숨쉬어야 할 것 같다. 양보라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 백지 한 장 차이로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일이다.
노약자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리면서 양보라는 미덕을 훈련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만치서 누군가 급히 달려올 때 천천히 오라고 손짓하며 잠시 단추를 눌러 주면 그가 뛰지 않고도 함께 탈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이미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내 태도가 방해꾼으로 보일 수 있음도 간과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대부분 이해하고 넘어가니 그런 선행은 계속해도 좋을 것 같다.
마귀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올무를 준비하고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거기 걸려들지 않으려면 사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만사를 바라보고 품어 안는 묘약을 항상 지니고 다닐 일이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