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홍시는 하늘에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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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을사년(乙巳年)스럽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1905년 을사년은 우리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을사늑약이 있었고 이 문서에 서명한 을사오적이 있었다. 늑약은 강제로 체결된 불평등 조약을 의미한다. 을사늑약이 부당하다고 거절했던 고종황제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었고 우리 민족사에 국권을 침탈당한 가장 수치스런 경술국치(庚戌國恥)에 이르게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외교권을 빼앗긴 침통한 분위기에서 유래된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지금도 날씨가 안 좋거나 무언가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이면 이 말이 사용된다.

공교롭게도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진 2025년이 을사년(乙巳年)이다. 뜬금없는 계엄으로 또 한 번 나라가 격랑 속에 요동치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 을씨년스런 세상이란 말이 다시 소환된다. 반세기 만에 이룬 경제화 민주화 선진화의 압축성장을 자랑과 긍지로 여기며 살고 있는 내 안방에 폭탄이 떨어진 느낌이다. 내일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염려로 밤과 낮이 바뀌고 원인 모를 우울감이 삶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가 절박한 시간이다. 

돼지 한 마리가 우리를 뒤적거리는데 홍시 하나가 옆에 툭 떨어졌다. 너무 맛있었다. 또 먹고 싶어서 우리를 온통 다 뒤집어 팠다. 주인이 그걸 보더니 몽둥이로 돼지를 죽도록 두들겨 팼다. 돼지는 너무 아파서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끙끙 앓았다. 그때 돼지 얼굴에 홍시 하나가 철퍼덕 떨어졌다. 돼지가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아, 홍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구나.’ 그렇다. 은혜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떨어뜨려 내리시는 것이다.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은혜가 풍성해야 인생도 풍성하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쳐다봐야 산다. 우리의 능력과 인맥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능력과 인맥을 동원해 보지만 승산은 없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막강한 능력과 인맥을 갖춘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를 받으면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위를 바라보며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1970년대 광주 충장로 2가에 가면 프린스(Prince)제과점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당시 유명한 DJ 서수옥이란 분이 있었다. 빵을 주문하고 듣고 싶은 곡을 적어서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함께 사연을 신청하면 촘촘히 꽂힌 디스크 박스에서 곡을 찾아 구수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연을 소개하고 들려주던 일들이 생각난다. 당시 팝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 중에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라는 가수가 있었다. 그의 노래 ‘Song sung Blue’는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참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기타를 수준급 이상으로 잘 쳤다. 공부하다 힘들고 우울해지면 친구는 기타를 치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Funny thing, but you can sing it With a cry in your voice And before you know it, start to feeling good” 이 노래는 누구나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지만,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내용이다. 정말 노래를 부르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찬송을 불렀다. “이 천지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찬송하는 동안 말씀의 울림과 평안이 오며 기분이 좋아진다. 예수님께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함께 생각나는 아침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자기 만족이다’는 말이 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환경의 조건이 일시적인 기쁨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하고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론 행복한데 느낄 때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복의 정점은 결국 자기 만족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된다.

바울 사도는 ‘내가 약할 때 곧 강하다’는 말을 했다. 자기 신념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의 말은 내가 약할 때 그래서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도움을 구하므로 강한 자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약한 나의 절박함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그분이 계시므로 사실은 행복자로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이 ‘항쉬범’의 원리는 내가 매일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갖는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오늘도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실 주님의 역사를 분명히 믿고 기도한다.

남택률 목사

<광주유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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