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하버드대학의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대단히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필독서로 읽힐 만큼 독서계를 강타한 것은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현직 대통령이 내란혐의로 체포된 가운데 건국 이래 최대의 헌정질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탄핵찬성과 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연일 벌어져도 K-pop을 부르며 평화로운 축제의 장을 펼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우리나라를 질서와 안정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제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시민의식에도 불구하고, 왜 여야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대결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까?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무엇이 정의일까? 필자의 생각에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자신만이 정의의 편이고 상대방은 부패하고 불공정하며 심지어 악이라고 믿는, 편협하고 독선적인 정의관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화가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제각기 다른 수많은 대답을 내놓았다. 현대의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인지는 실로 간단하지 않다. 프랑스 대혁명이 내건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가 실현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쉽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동시에 실현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자유경쟁은 필연적으로 경제적인 불평등을 가져왔다. 현대사회에 들어와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조세를 부과해서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기업을 규제하고 세율을 올리면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혁신의 동력을 잃고 경제는 침체에 빠지게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게 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되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의라고 해도,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서양의 근대사는 적절한 균형을 찾는데 수백 년의 정치적 투쟁과 심지어는 혁명을 경험하기도 한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이 모두 같은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은 가장 자유를 중시해 세율을 낮추고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들인 데 비해,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높은 세율에 강력한 복지정책을 펴는 나라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균형을 택할 것인가? 여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어떻게든 정치적인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야말로 지극히 어려운 정치적인 난제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 정권을 번갈아 가며 경험했지만, 아직도 적절한 합의 없이 서로 극단적인 대립만을 계속해 오다가 오늘의 이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극단적인 대결을 끝내고 서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철학 혹은 정의관이 제시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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