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속을 이어가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달리 유난히 예약이라는 것이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온 지 오래인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 밥 한 끼를 먹으려 해도 식당에 예약이라는 걸 해야만 자리를 얻어 밥을 먹을 수 있다. 예전처럼 그냥 어정어정 갔다가는 문 앞에서 쫓겨나는 세상이 되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예약이다. 예전처럼 줄을 오래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일이건만 옛날 사람인 늙은이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풍속이 아닌가 한다.
어찌 됐건 하고 많은 종류의 약속들을 하고 살다 보니 약속을 안 지켜서 낭패를 당하거나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거의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의 크고 작은 약속은 비교적 잘들 지키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약속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게 잊어버린다. 아니 잊는다기보다 아예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안 그러겠지만 이 못난 아낙의 경우이다. 신년이면 새해 기도 제목을 열심히 작성해서 올린다. 그래 놓고는 그것은 그것이고 사는 건 사는 게 돼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도대체 어째서 그러는 걸까? 하찮은 작은 약속도 정신차려 지키면서 하나님과의 지엄한 약속을 아예 잊다시피 하고서도 별 죄의식도 없으니 중증 환자라 할 만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은 약속들은 실제 생활에서 안 지켰을 때 금세 그 대가가 돌아온다. 상대방의 불이익을 변상해야 하거나 신용도의 추락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데 지장을 가져오게 되어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리의 건망증에 자극을 주어 그것을 지키게 하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커다란 약속은 지키거나 안 지키거나 그 결과가 아둔한 내 머리에 잘 전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보살핌으로 무난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다 내 노력 덕이고 결과라는 자만에 빠져있기 일쑤이다. 무슨 일이 잘못되어야 그때서야 아이고 하나님 살려 주시라고 덤빈다. 새해 기도 제목을 적어야 하는 종이를 앞에 놓고 경건히 고개 숙인다. 하나님 올 한 해는 오직 주님 뜻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