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정도(正道)를 가라

Google+ LinkedIn Katalk +

모든 사람은 자기 소신대로 한 생애를 살아간다.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실패한 생애 속에 비극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다. 옛 속담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섞지를 말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길이 있다. 인간 세계의 길에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길에서 악과 불의를 조장하는 길에 동행했다가는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그런 인간 욕망의 심리를 악용한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경우, 악과 불의의 함정에 빠져들어 갈 때, 범죄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고, 비극의 종말에 이를 수도 있다. 한 생애의 종착역에 와서 후회한들 잃어버린 소중한 생애를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에서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다. 인간 사회에서 실패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탐욕 때문이다. 범죄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탐욕을 이기지 못해서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조카 롯과 네게브로 이동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다.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하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기름진 땅을 선택한 롯은 후에 많은 재산을 약탈당하는 위기 속에서 아브람 군대가 건져 주었다. 후에 룻에게 양보와 희생의 정신을 발휘했던 아브람은 많은 소유의 축복을 받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들은 재산을 많이 소유한 부자,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을 선망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고, 어떻게 출세했는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만일 부당한 방법과 술수에 의해서 치부하고, 불의한 방법에 의해서 출세한 사람들이라면, 선호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설에 암적 존재로서, 공직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규탄해야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 정직하고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직하고, 술수에 능한 사람들이 빛을 보는 사회가 된다면, 선진국 국민으로 자랑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나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전술한 “말이 아니면 섞지를 말라”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 정착해 살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문화와 종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섞여 버려서는 안 된다는 혼합주의를 경고한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사상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존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상과 문화 속에 진실성이 없는 거짓과 허상이라는 우상까지 인정하는 혼합주의를 정당화하라는 말은 아니다.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다.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거짓을 진실로 위장시키고, 그것을 현실에서 권력으로 강요할 때, 그 길을 맹종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예컨대, 북한에서 백두혈통만이 권력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근거 없는 거짓이다. 만일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 침묵하거나 눈을 감아버린다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나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거짓과 불의를 배척하고 진실과 정의를 향해 정도를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는 바울의 주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원고는 1월 4일 별세한 고 조인형 장로의 유작입니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