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교회 재건… 역사와 미래의 연결고리 기대
통일과 신앙 중심지로서 역할 기대하며 드린 기도
역사 가치 두고 의견 갈렸지만 협력으로 재건 성공
온갖 어려움 끝에 설립됐음에도 현재 평양과학기술대는 그 이름에 걸맞은 첨단 기술 학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400여 명의 공산당 고위층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 국적의 교수들이 강의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은 영어로 이뤄진다. 은밀하게 복음교육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학교를 세우기 위한 한국 교회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학교에 기대하는 또 다른 역할도 있다. 훗날 만약 평양이 개방된다면 평양과학기술대 건물들은 국제 오피스빌딩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평양 시내에는 유경호텔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오피스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건물을 새로 지을 공간도 없다. 평양과학기술대가 개혁개방의 때를 맞아 랜드마크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낡은 봉수교회 건물을 다시 세우는 데도 한국 교회의 역할이 컸다. 봉수교회로부터 전국 남선교회 전국연합회에 교회 보수공사 요청이 들어왔다. 전국 남선교회에서는 보수공사보다는 개축공사를 하자는 제안을 북측에 했다. 나는 헐고 다시 짓는 개축 공사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낡았다고는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봉수교회는 헐리고 2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내가 전국장로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남선교회 전국연합회 소속의 많은 분들이 애썼고 나도 헌금을 했다. 내 의견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게 중요했다.
2007년 12월, 새 예배당에서의 입당 예배 때 기도순서를 맡아 참석했다. 그때까지 본 평양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교회 내에 붉은 공산당 구호가 없는 데 대해서 안도했다. 대표기도를 위해 단상에 올라 교회 내부와 동원된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교회가 통일을 위한 창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기억이 난다.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이 있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곳(봉수교회)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사모하였습니다. 이제 허락하시니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남과 북이 내 손으로 하나가 되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남북의 교회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주께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세울 때,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눈물과 기쁨이 교차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 땅에 성전이 무너졌는가?’하는 안타까운 눈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 땅에 다시 성전을 세우시니 그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는 소리와 기뻐서 외치는 소리를 구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에스라 3:13). 오늘 저희들의 심정이 그러합니다.
그 옛날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이곳(봉수교회)을 하나님의 땅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지금 이 봉수교회가 과거 평양의 교회처럼 화려하지 않고 미약하지만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가 열릴 것을 믿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눈에 보인 것은 한 조각 구름뿐이었으나 그 속에서 ‘큰 비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집을 지었으나 하나님이 계셔야만 온전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에 주님이 계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나오는 생명들을 만나주시고,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시고, 이 백성과 이 땅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여기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고,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있고, 성도의 교제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중략) 이 성전 건축을 위해 수고한 모든 남북의 관계자들, 참여한 교회와 성도들의 헌신을 기억하시옵소서.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민족 위에 넘치기를 바라며, 남북의 교회를 통해 이 민족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순종은 축복의 통로
청년 시절 교회학교 아동부 교사로 시작해 주어지는 대로 여러 가지 직책을 감당하다 보니 60년이 훌쩍 지나 어느덧 80대 후반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들과 딸에게는 미안하기도 하다. 사업하랴 봉사하랴,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가하게 나들이 한 번 가본 일이 없고, 여름휴가도 교회학교 행사로 보낸 적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그런 아빠를 긍정적으로 봐주었다는 것이다.
큰아들 성빈이가 고3일 때 나도 마침 소망교회 고등부 고3반 담임을 맡았다. 아들에게 넌지시 “우리 반으로 올래?”하니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1년간 성빈이가 우리 반에 있었는데, 12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졸업할 때는 20명으로 늘어 있었다. 보통 고3반은 대입 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인원이 절반까지 줄거나 아예 반이 없어지곤 했다. 우리반 출석 인원이 더 늘어난 것은 성빈이가 아버지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친구들을 더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반에서 같이 공부를 해보니 새삼 아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유치부 때부터 고3 때까지 교회학교 생활을 착실하게 해준 것이 대견했고, 고마웠다. 딸 유빈이도 그때 “아빠, 저도 고3 되면 아빠가 담임해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를 좋게 봐주고 있구나’ 싶어 뿌듯했던 기분이 생생하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