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엄마의 지혜로운 자녀교육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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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회사 사장 이·취임식이 있었기에 그곳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종로 5가 전철역 1호선 폼에서 내가 타야 할 차를 기다리고 있는 참인데 내 옆에 엄마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어린애가 너무 귀여웠다. 나는 그 애 곁에 가서 말을 걸었다. /“너, 참 예쁘다. 지금 몇 살이지?”/ /“네 살이어요.”/ /“이렇게 예쁜 사람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서 내려왔겠지?”/ 대답은 하지 않고 빙그레 웃고 있다. /“분명하지? 하늘에서 내려왔지?”/ 여전히 빙그레 웃다가 /“예”/라고 대답을 한다.  

그때였다. 손을 잡고 있던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러면 나를 무어라고 부르니?”/ 하니까 딸은 /“엄마라고 부르지요.”/ /“틀림이 없지?”/ 딸애가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히 너를 낳은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내가 너의 엄마가 맞니?”/ 여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네가 할아버지에게 ‘예’라고 대답했는데 그 대답을 어떻다고 생각하니?”/“거짓말로 대답이었어요. 잘못했어요.”/ /“그러면 앞으로 무슨 말이든 어떻게 대답하겠니?”/ /“정직하게 대답할게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지 않는가. /“할아버지가 잘못했다. 네가 정말 예뻐서 한 말이었는데 너에게 자꾸 대답을 들으려고 물었다는 것이 잘못이다. 할아버지를 용서해 달라.”/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는 동안 인천행 열차가 도착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엄마와 딸의 대화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엄마는 딸을 윽박지르며 나무라지 않았다. 딸에게 “너는 나를 무어라고 부르니?”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을 뿐인데. “엄마라고 부르지요”했다. “틀림이 없지?” 재차 확인하니 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다시 딸에게 이해시키려고 “만일 네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면 내가 너의 엄마가 아니야. 너를 낳아준 사람이 너의 엄마니까. 그런데 내가 너를 낳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앞으로 누가 너에게 무슨 말을 묻든지 정직히 대답하는 거야. 만일 거짓으로 대답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버릇이 된단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니? 거짓말쟁이가 되면 큰일이란다. 만일 네가 너의 친구에게 ‘갑자기 아파 못 걷겠다’ 했을 때 ‘어디가 아픈데?’ 하며 얼른 약국이나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할 수 있도록 해주겠지. 만일 친구가 ‘쟤는 지금도 거짓말이야’하며 그 말을 믿지 않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겠니? 조용히 생각해 보렴. 앞으로 누가 무슨 말을 너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겠니?” /“사실대로 대답 할께요.” 

엄마는 딸이 잘못 대답했음을 스스로 시인하면서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깊이 깨닫도록 해주는 교육방법이니 참으로 뛰어나다. 엄마는 딸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묻고,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무어라 부르니?” 엄마에게 대답하는 방식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이런 교육이 사고력 신장을 배로 일으키니 얼마나 좋은가.  

딸의 말도 그렇다. 아직 응석 부릴 네 살 난 어린이인데 엄마에게 경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퍽 자연스럽다. 학교 교육은 지식교육이라 한다면 가정교육은 인격교육이 아닐까. 학교와 가정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우리의 사회는 더 명랑해질 것이라 여겨진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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