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응답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신앙은 사람에 따라서는 미신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신앙은 확실히 일종의 모험이다. 신앙을 좇다가 혹은 실패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는 당사자는 신앙이 결코 미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앙이란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신자의 응락(應諾)이다. ~그에게는 신앙 그 자체가 보지 못한 것의 증거인 셈이다. 그는 “네게 신앙이 생겨나는 것을 보니 이에 대응하는 실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물을 가지고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지고 실물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다. 이 힘이 없다면 그런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아내를 기쁘게하는 길은
남편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의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7).
아내를 기쁘게 하는 길은 연극을 함께 보는 것이 아니다. 호사스러운 옷을 사주는 것이 아니다. 여종을 부리게 해 줌으로써 고귀한 신부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는 길은 남편 자신이 몸을 성결하게 간직함으로써 그녀의 정절에 보답하는 데 있다. 소비를 줄이고 가정을 잘 이끌어 감으로써 그녀의 수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
남편에게 이런 마음이 있으면 아내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것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의를 위해 박해를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아내를 대우하는 길은 그 고귀한 품성을 격려해 주는 데 있다. 그 비천한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서 구원을 받아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린도 후서 4:14)
나는 현세에서부터 구원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구원받고 싶지는 않다. 곧 나의 영도 육도 현세에서 완전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몸은 죄 때문에 이미 죽었고, 육체는 죄 때문에 이미 죽음의 몸이 영구히 살게 될 리는 없다. 썩어 없어질 육체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현세를 의지하지 못할 가장 명확한 증거다.
나는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싶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은 물론이고, 몸도 죽지 않는 경지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 경지는 이 세상에서는 바랄 수 없는 것.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멸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썩지 않음을 밝혀 드러내셨다.”(딤후 1:10). 그런데 이 생명과 썩지 않음은 그가 다시 오실 때에 우리에게 사실로 나타난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