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은 밧세바 사건 이후에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닫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건에서 나단 선지자는 직언을 아끼지 않았고, 다윗은 그 말을 받아들여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쳤다. 중요한 점은 다윗이 왕으로서 엄청난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단의 직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았고, 늘 직언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나단은 두려움 없이 다윗의 죄를 지적할 수 있었고, 다윗은 그 지적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권력자들은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충신을 가까이 두기보다는, 아첨과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이가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점차 자신의 범죄가 측근들에 의해 은폐되거나 공유된다. 권력자의 주변을 채운 간신들은 그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이권을 챙긴다. 결국, 권력자와 그 주변 인물을 통제할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부패와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다윗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비판하고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었기에 위기 속에서도 진정한 회개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강력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넘어,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신앙의 깊이를 드러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다윗 같은 지도자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권력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윗은 직언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공동체를 걱정하는 충신들을 가까이 두었기에 단순히 그의 시대의 왕에 그치지 않고, 모든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가 되었다.
그가 남긴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권력자들은 간신들의 아첨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으로 직언할 수 있는 충신을 가까이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이는 오늘날 교계와 사회에서 직언과 성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된다. 다윗과 나단 같은 지도자의 모델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에 문제와 범죄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기 상황과 교회의 정의가 실종된 혼란 속에서, 성군 다윗도 선지자 나단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매우 슬프다. 나단을 깨워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비극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