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성도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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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다. 사랑과 친밀감으로 서로 배려했다. 60~70여 년 전 필자가 초·중·고를 다닐 무렵에는 농촌에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구역 예배가 있는 날 저녁이면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어 이웃 마을까지 가서 예배를 드렸다. 식량도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예배를 마친 후에 간식을 내 놓으면 맛있게 먹기도 했다. 그 곳에는 성도 간의 따뜻한 사랑의 교제가 있었다.

지금은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사용되고 있는가? 마루 바닥에 그대로 앉아 예배드리는 교회는 거의 없다. 심지어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 예배까지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성도들의 경제적인 형편도 훨씬 나아졌다. 1천 명 이상의 중형(中型)교회는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교인들이 많다. 초대 교회의 특징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른 성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핍박이나 당하지 않는지 늘 보살폈다. 복음 전하는 일에 서로 거들었다. 지금은 결혼식, 장례식, 아픈 사람 병 문안을 위한 기도에도 극히 제한적으로 구역이나 교구로 배정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도(聖徒, Saint)가 되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교인을 성도(聖徒, Saint),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 ‘성도’란 구별된 사람, 거룩한 사람의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따로 불러 낸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죄와 허물 가운데서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임해 믿음을 갖게 되었다. 거룩한 자기 백성으로 성별(聖別)해 하나님의 권속(眷屬, One’s family)이 되었다. 바로 성도이다. 하나님의 크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해 선택해 구별된 사람이다. 참으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성도가 걸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거룩한 삶을 살고자 힘쓰게 된다. 거룩한 삶, 경건한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애쓴다. 성도는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다른 질서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영적(靈的)인 사람이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다. 성도들 속에는 세상의 빈부귀천, 지위고하가 적용되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님의 권속이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과 특성이다. 성도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다. 복음 안에 들어오면 회심하게 된다. 누구든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예수를 믿다가 발각이 되면 혹심한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불구하고 황실(皇室)에도, 군인에게도, 귀족, 노예를 가릴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심지어 카타콤(Catacomb, 지하 무덤, 굴과 방) 속으로 들어가 신앙을 지키며 살기도 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활동에는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정작 나타내야 할 직장(일터)에서는 자신이 성도임을 감추거나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거나 유혹에 빠지고 넘어간다. 쉽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낸다. 불신자보다 더 이기적이라는 평판을 듣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배려에도 너무나 인색하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인구에 비해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기를 즐거워하고 영광으로 알았다.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았다. 이런 성도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었다.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다. 그들은 순교도 했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만큼 선행(善行)을 하고 있는가?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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