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원(75) 전 국무총리는 경남 하동군 빈농가에서 태어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열두 남매 중 열째로 태어나 부모에게 도움을 받아 공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농사일을 돕기 바라셨다. 얼마동안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으나 학교에 가지 못해 아쉬워 했다. 그런데 친척들의 설득으로 학비를 내지 않는 진주 사범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홀로 진주에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공부를 하다가 남의 집 다락방에서 지내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있었다.
그가 서울 인왕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야간부에 입학했다. 그 당시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주간 학생들처럼 서클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그는 교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나 공부를 계속했다. 그의 형님이 고시 공부를 하다가 실패한데 자극을 받아 고시 공부를 했다. 물론 군대도 다녀왔고 늦깎이로 사법고시에 도전해 1972년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 온갖 수재가 모여 내로라하는 동기 중에서 성적은 4등을 했다. 당시 수석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되어 비록 야간대학 출신이나 원리원칙주의자로 검사시절에 든든한 배경이 경력이었다. 그는 황교안 전 총리와 멘토이기도 하다. 같은 대학 출신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공통분모로 검찰재직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 황 전 총리를 청와대에 등용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그는 퇴임 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았다. 법원장, 검사장 같은 고위 공직자는 퇴임 후 변호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예를 얻은 사람이 돈까지 추구하면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신념을 주장했으며, 그의 사무실에는 현재 법률 서적이 한 권도 없다. 그는 현재 서울 마포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100인분 식사를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활을 하도록 일감을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