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1907년 성령의 부흥 불길 전국 번져
김익두 목사 ‘권능의 사자’… 기사‧이적 나타나
한국교회에는 1907년을 기해 놀라운 성령 부흥의 큰 불길이 일어났다. 이 불길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모인 사경회 때 그 절정을 이루었으며, 낮에는 성경공부, 밤에는 부흥 전도 집회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 집회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번져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로 인해 많은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 부흥운동을 계속해서 인도한 지도자로는 영계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가 있고, 그와 함께 김익두 목사가 있어 양대 인물로 추앙되었다. 김익두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하면 수십 리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교회 안에는 물론 밖에 다락을 메고 그 위에 올라서서 설교했다. 삼천리 방방곡곡 어느 곳이든 그는 찾아갔으며, 그 당시 한국의 교인이라면 김익두 목사의 힘 있는 설교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설교는 예수의 십자가와 그의 보혈에 의한 속죄, 회개에 따른 중생체험(衆生體驗), 부활(復活)과 천국(天國)의 영생복락(永生福樂) 등이 중심이었는데 설교에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능력과 매력에 청중들은 도취되었다.
1919년 10월 평안남도 어느 교회에서 사경회를 마친 후 그를 찾아온 목사와 마가복음 16장 17~18절의 말씀을 가지고 토론이 있었는데 ‘만일 주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이 지금도 필요하다면 왜 우리에게 이 은사를 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길가의 앉은뱅이 걸인을 보고 병 고치는 이적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그 곁으로 가서 “일어나라” 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그대로 앉아 쳐다만 볼 뿐 전혀 일어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능력을 얻지 못함은 믿음이 약한 탓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그는 간곡히 기도해 1개월 후부터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다.
1919년 가을부터 김익두 목사는 서울의 남문밖교회에서 이재형 목사와 함께 시무했다. 이곳에서 김익두의 겸손한 태도와 기도 생활, 능력 있는 설교, 성경 사랑과 해박한 지식 등이 믿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에게 여러 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해 달라는 청탁이 왔다.
1919년 10월 강동(江東) 영파교회 사경회에서 본격적인 신유의 능력을 갖춘 그는 그 뒤 많은 병자를 고쳤다. 기록상으로 최초의 이적은 1919년 12월 경북 달성군 현풍교회 사경회 때의 일이다.
수백 명의 교인이 참석한 중에 병자 박수진(朴守眞)이 끼어 있었다. 그 병자는 10년 전에 아래턱이 떨어져 갖은 방법으로 치료했으나 효력이 없으므로 이제는 거지가 되어 세상에서는 아무 소망 없이 예수 믿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나와 있었다. 김익두 목사는 그 불쌍한 정경을 보고 너무나 가련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김익두 목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금식 기도했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병자의 아래턱이 완전히 올라붙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 이름을 박수은(朴受恩)으로 고쳤다.
이후 1920년 4월 영남지방 집회 때에는 많은 병자가 치유받는 집단적 기적 현상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그는 ‘권능의 사자’로서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열면서 도처에서 기사와 이적을 나타냈다.
1920년 6월 31일 평양 연합부흥회에는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6천여 명이 모였다. 이후 그가 제9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피선된 후 그해 10월 서울 승동교회에서 2주간 열린 연합부흥회에는 연인원 1만여 명이 참석해 철야 기도하며 통회 자복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