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려운 시대이다. 지난날 IMF로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당할 때보다, 코로나로 세상이 얼어붙었을 때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그렇다고 내란 수괴로 몰려 감옥신세가 되고, 국가를 이끌어가야 할 행정부 수장들이 거의 다 탄핵이 되어 그 기능이 마비되어 있고, 바른 판단을 해야 할 헌재는 색깔론에 휘말려서 갈팡질팡을 하고, 국회는 거의 반국가 단체 수준으로 전락해서 아이들조차 우습게 여기는 폐단의 집단이 되었고 메이저 언론들은 특정 이념의 나팔수로 전락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등, 국가가 온통 이념의 파도에 휩쓸려 침몰 직전에 있다. 때를 만난 듯 정치 지향적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무리수를 두고 교단장을 비롯해 신학교 교수들까지 무리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양분된 이념으로 상호 적대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와중에도 다수의 교회가 깊은 침묵 속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있는지 없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여론을 이끌 힘을 가진 대형 교회들과 책임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깊은 침묵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왜 교회는 현실 문제에 대해, 심각한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아니 하나님 나라 가치를 통째로 무너뜨릴 악한 세력이 점점 더 그 세를 확장해 가는 심각한 현실을 방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야 있을 것이다. 교인들의 다양한 성향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의 통일된 의견 조율이 어렵고 교인들의 반발이 염려되어 그럴 수도 있고 불필요한 이념 분쟁에 휩싸일 위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나름대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 국가 정체성이 위협을 받고 불순한 세력들에게 국가가 통째로 넘어갈 위험까지 느껴지는 때에 구차한 보신주의에 매달려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은 교회 됨,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의 심각한 문제임을 스스로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의 표면적인 주장은 교회는 세상 문제에 대해, 특히 정치문제에 대해 간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운다. 세상일에 초연한 태도가 교회의 경건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시국에 정교분리라는 한가한 논리로 현실 문제에 눈을 감는 것은 교회, 특히 예언자적 사명을 가진 교회의 무책임이고 책임회피이다. 이런 때에 교회가 여론을 바르게 이끌어 가고 시대사조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세상일에 간여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는 세상이 바로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빛을 비추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교회”의 빛이 아니라 “교회”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말 아래” 숨겨두는 빛이 아니라 “등경 위에”서 세상을 비추는 빛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교회는 잘못된 정치,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역사로 흘러가는 시대정신, 사람들을 잘못된 정신(이념)으로 오도하는 악한 세력을 막아서야 한다. 나라를 악한 이념으로 더럽히는 정치, 잘못된 이념으로 오염 시키는 여론,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정책에 대해 막아서야 한다. 이는 국민으로서의 책무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의 신앙적 의무이다. 교회는 세상사에 초연하고 사회 문제를 방관하며 천국만 바라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다. 어둠을 밝혀야 하는 빛이고 부패를 막아야 하는 소금이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하고 몰려오는 악한 세력, 오도된 시대정신에 맞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 소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말 아래 감추어진 등불이 아니라 등경 위에 있는 등불이어야 한다. 등불은 등경 위에 있어야 한다.
이만규 목사
<신양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