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가난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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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의 환도 후 셋방살이의 탄식

황금찬(黃錦燦(1918-2017) 시인은 백수(白壽)를 누린 장수한 시객(詩客)이다. 백수를 맞아 어느 인터뷰에서 평생 시를 쓰며 살아오셨는데,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말씀을 묻자 “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시를 써 왔다”, “시인은 늙어도 시는 늙지 않는다” 등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황 시인은 한 때 TV 공중매체에 출연해 활달한 언변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을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사석에서 들려 주신 집안의 내력으로 “우리 집안은 선조 때부터 장수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장수의 기골(氣骨)을 유전(遺傳)으로 이어 받은 것이다.

황 시인은 강원도 속초 태생이다. 부모님을 따라 함경북도 성진(城津)에 가서 성장했다. 13세 때 그 고장 제일교회(장로교)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 담임 목사는 김선주 목사이다. 김 목사는 3.1운동 당시 평양거리에서 앞장서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분으로 교회와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분이라고 회고한다. 세례 문답을 받기 위해 목사님 앞에 앉자, 목사님은 “금찬아, 너희 집에서 누가 예수님을 제일 잘 믿는 것 같더냐?”라고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해서 망설이다가 “네, 저의 아버님이 제일 잘 믿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대답을 들은 목사님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몇 마디 더 묻고는 “됐다!” 하시며 세례 문답에 통과했음을 인정 해주시던 일화를 소개하신다. 

바느질하는 손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아내는/바느질하고 있다/장난과 트집으로 때 묻은 어린놈이/아내의 무릎 옆에서 잠자고 있다//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얼음처럼 차다/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오늘따라 면경을 본다//겹실을 꿴 긴 바늘이 아내의 손 끝에선/사랑이 되고,/때꾸러기의 뚫어진 바지 구멍을/아내는 그 사랑으로 메우고 있다//아내의 사랑으로 어린 놈은 크고/어린 놈이 자라면 아내는 늙는다//내일도 날인데 그만 자지,/아내는 대답대신/쓸쓸히 웃는다//밤이 깊어갈수록 촉광이 밝고/촉광이 밝을수록/아내의 눈가에 잔주름이/더 많아진다.

이 작품은 첫 시집 <현장(現場)>에 수록한 시이다. 평생의 반려자 아내에 대한 감정을 소상하게 기술한 서사록(敍事錄)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아내는/바느질을 하고 있다”, “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오늘따라 면경을 본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산문체의 시이다. 

황 시인은 같은 시집에 “마지막 전차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 간다”/사랑방 한 간에 일곱 식구가 산다/남의 집에서 살면 아이들이 불쌍하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전차표 두어 장 하고/시민증 그 밖엔 아무것도 없다”, “지금 그 사랑방에는/십환(十圜)짜리를/금쪽처럼 쪼개쓰는 아내가 현기증으로/누워 있을 것이다”(‘종전차(終電車)에 앉아서’의 몇 부분 발췌) 라는 시도 실었다.

6.25 당시 환도후에 ‘원(圓)’을 ‘환(圜)’으로 화폐 개혁한 시절에 쓴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해 느끼는 애절함이 화자의 골수에 배어 난다.

황금찬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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