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이 말은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가훈(家訓)의 하나로, 직역(直譯)하면 “바보가 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라는 뜻인데, 이것을 의역(意譯)하면 “자기를 낮추고 남에게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결국 현명한 처세(處世)”라는 말이기도 하다.
총명한 사람이 똑똑함을 감추고 바보처럼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난득호도’는 청(靑) 나라 문학가이자 화가요, 서예가로 알려진 정판교(鄭板橋)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그는 부연(敷衍)해서 설명하기를 《바보가 바보처럼 살면 그냥 바보이지만, 똑똑한 사람이 때로는 자기를 낮추고 똑똑함을 감추며 바보처럼 처신하는 것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동양 철학의 핵심인 듯하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똑똑함을 내세운 사람들끼리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 더 많이 가지려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 것을 보게 된다. ‘똑똑하다’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지만 세상살이는 ‘똑똑함’이나 ‘총명(聰明)’ 그 자체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결국, 정말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때론 침묵의 지혜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방을 굴복시킨 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긴 자가 곧 승리자일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처세이다.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지기 싫어하고 나서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의 사소한 잘못을 따지지 않고 덮어주고 도와주며 화목하게 하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선한 길이기도 하다. 오늘도 우리 사회에서 그런 ‘훌륭한 바보’가 그립다. 그런 바보들이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도의 어느 민간단체는 매년 「국제바보대회」를 연다고 한다. 힌두교 봄 축제의 이날, ‘바보 왕’을 선발하고 ‘시가행진’을 벌인다. 그 취지(趣旨)는 “바보들은 싸우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차원에서 착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바보’가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바보수업’은 이러하다. “제 십자가를 지라, 자기를 부인하라, 이웃에게 그들의 요구 이상으로 더 잘해 주어라, 용서하라, 포기하라, 낮아져라, 나눠 주어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밍웨이」는 ‘자신의 삶’을 “필라멘트가 끓어진 전구(電球)와 같다”고 자평(自評)했다. 헤밍웨이는 뿌리 깊은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디엘 무디」의 절친한 ‘동역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탁월한 문학가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맞추어 질 수 없는 ‘퍼즐(puzzle)’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빠졌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대표적인 ‘바보’를 찾으라면 먼저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갈대아」를 떠나기 전에는 꽤나 장래가 밝은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길을 떠나는데 동네 사람이 “왜 가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간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나도 모른다.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시는 데로 간다”라고 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이런 멍청스런(?) 대답을 듣고 “장래가 촉망되는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더니 ‘바보’였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꼭 이렇게 바보스럽게 살 필요가 있을까? 조금 타협하면 쉬운 길이 보이는데 말이다. 정말로 이렇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고지식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필요가 있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고지식한 사람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런 바보들을 찾아서 그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펼쳐 가시기 때문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