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지나고 첫 주일이 지나자 바로 입춘이다. 입춘대길이라고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고 하던 풍습이 카톡에만 부지런히 등장한다. 어찌됐건 봄이 코앞이라니 마음이 싱숭생숭 한다. 아직도 겨울이건만 그 한 가운데 벌써 봄을 노래하던 옛어른들의 정취가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게 항상 이때쯤이다. 올해는 입춘이 벼락을 맞았다. 입춘 폭설이 발을 온통 묶어놓고 사고를 연발시켰다. 애꿎은 동물들이 피해를 당하고 사람들도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그런데 이게 뭡니까? 너무 심한 날씨 변덕에 이런 불평쯤 밀고 올라올 법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항상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이 이럴 때는 해당 안 될까? 그렇지 않다. 매사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조심하고 근신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너무 일찍 봄이라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이야 없지만 아직은 겨울의 끄트머리에 한파의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을 항상 겪으면서도 미리 앞만 보고 겅중거리면 낭패를 당하기 나름이다.
감기가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겨울이면 감기와 함께 지나는 체질일 정도로 감기를 끼고 살되 그리 심하지 않아 적당히 조심하면서 살아온 평생이다. 기관지가 약하고 편도선이 안 좋아서 걸핏하면 목이 붓고 아프다. 그러면 얼른 조심하고 그럴 때 좋다는 식품을 끓여 먹는 대응을 하면서 잘 견뎌왔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그게 아니다.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할 수 없이 병원에 갔더니 후두염이라며 항생제를 5일분 처방해 주고 다 먹고 다시 병원에 꼭 오라는 당부였다. 때를 놓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감기 한 달 동안 한 번도 제대로 감기 좀 낫게 해 주시라는 기도를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있는 일인데 무슨 기도씩이나, 하는 교만이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입춘 폭설을 보면서 교만 벼락을 생각한다. 하나님 이제라도 이 미련한 교만을 물리쳐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큰일에만 매달리라 하신 적이 없으신 주님을 생각해야겠다. 입춘 폭설도 사랑이시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