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설교의 황제 : 찰스 스펄전

Google+ LinkedIn Katalk +

찰스 스펄전(C H Spergeon, 1834~1892) 목사를 설교의 황태자로 부른다. 스펄전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바친다는 신앙으로 살았다. 17살에 목회를 시작한 스펄전은 스스로 목회를 위해 살았던 목사였다. 56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뜨거운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목회를 했다. 19살에 300년 전통의 런던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에 부임했다. 죽는 날까지 38년을 목회했다. 부임할 당시 교인 수는 80~200명 정도였다. 마지막 설교를 할 즈음에는 1만 5천여 명 이상이 모였다. 정기 출석은 6천여 명으로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강단은 지식주의에 치우치고 전통과 교리만을 강조하는 메마른 설교였다. 교인들은 세속주의에 젖어 있었다. 스펄전은 깊은 영성의 설교로 부흥을 일으켰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영광을 드높여 19세기 영국 교회에 부흥의 불꽃을 피웠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심과 탁월한 영성은 스펄전 목사의 목회 원동력이었다. 평생 동안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았다.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며 사랑했다. 그러므로 그의 목회는 ‘영혼 사랑의 목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요일에는 70명 이상을 심방했다. 

런던에 콜레라가 유행할 때는 새벽 2시까지 심방하면서 병자들을 위로하고 보살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비하면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여섯 살 때 존 번연의 책을 읽고 사람이 짊어진 죄짐을 알았다. 10살쯤 되었을 때 그 죄짐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버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합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는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1849년 12월, 열병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스펄전은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주일에 눈이 많이 내렸다. 설교를 담당한 목사님이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시간 내에 도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평신도가 대신 설교를 하게 되었다. 스펄전은 예배를 드리다가 갈망하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 설교를 듣는 중에 회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평신도는 많은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발음도 정확하지 못했다. 불구하고 “나를 바라보라”는 말씀이 스펄전의 죄의 구원 문제를 한 순간에 해결해 주었다. 

스펄전의 방대한 시편 주석 12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생명의 말씀사) 스펄전은 성경을 다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겼지만 특히 시편을 애독했다고 전해진다. 루터가 교수로서 행한 첫 강의가 바로 시편이었다. 스펄전은 시편 전체를 주석(註釋)했다.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라고 했다. 모든 성도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이 시편이라고 했다. 시편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칼빈은 ‘시편은 은혜의 수단인 기도로써의 책’이며 ‘회중에 의해서 부르는 기도’가 시편이라고 했다. 노래하는 기도이다. 시편에는 고귀한 품격과 인생의 모든 모습이 나타나 있다. 

성경의 모든 책이 다 중요하다. 그 중에 시편은 복음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예배 중에 교독문으로 시편을 주로 봉송(奉頌)한다. 

칼빈은 시편을 가리켜 “우리 마음을 고양(高揚)하고 자극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시편을 배워야 한다. 그 후에 우리는 찬송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