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한국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하는 첫 순서는 묵도(黙禱)이다. 1905년(광무 9년)에 발행된 『찬미가』의 서문에 기록된 ‘예배 절차’를 보면 맨 처음 순서에 묵도라는 단어가 없지만, 실제의 첫 순서는 묵도였다. “우리 예배하는 시간은 미리 작정한 대로 꼭 시작하고 교우들이 회당에 들어온 후에 즉시 엎드려 기도할지니라. / 제일: 풍류로 노래함 / 제이: 교우들이 서셔 찬미가를 노래함 / […]”
위의 예배 절차에 ‘묵도’라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첫 번째 순서인 “제일: 풍류로 노래함”이 무슨 뜻일까? 이것은 회중이 풍금 반주에 맞추어 조용히 눈 감고 묵도(黙禱)를 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순서로 함께 회중이 찬송을 부른 것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교우들이 회당에 들어온 후에 즉시 엎드려 기도했다”는 말이다. 이는 예배 전에 미리 온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조용히 엎드려 묵상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묵도는 우리 한국교회가 자생적으로 발전시킨 세계에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예배 의식이다.
예배는 복음이지만 예배 의식은 문화이다. 복음은 유일하고 불변하지만, 문화는 민족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다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미국으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예배 문화는 한국적인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현실은 미국교회의 예배 문화에 강요당하고 있다. 묵도를 한국교회에서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다른 나라의 예배가 기준이 될 수 없으며, 과거 외국의 경험들이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없다.
‘묵도’를 예배에서 없애려는 사람들의 대안은 미국 예배 문화를 한국교회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들은 묵도를 버리고 그 자리에 ‘예배에의 부름’을 넣었다. 이 생뚱맞고 의미 파악이 안 되는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미국교회의 예배 시작에 있는 순서 ‘콜 투 워십’(Call to Worship)을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예배 시작 순서인 묵도를 버리고 예배를 미국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한국교회 예배는 점차 미국교회 예배의 판박이가 되었고,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예배 분위기에 ‘가스라이팅’ 당해서 자기 예배 문화가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예배의 시작을 다시 묵도로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예배가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는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유한 예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