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신앙생활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Google+ LinkedIn Katalk +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롭고, 우리를 복된 자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신비는 사라지고, 경외도 경건도 퇴색되어 하나님의 역사도 희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복을 구하기를 거부하고 복을 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이로움과 복으로 가득 차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모두 경이로움과 놀라운 기적과 이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된 자로 부르시고 복을 주시며,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신비의 영역이요,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이 받는 은혜와 복을 보는 과정입니다. 

성경의 신비란, 우리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대표적으로 창조의 역사가 그렇고, 동정녀 탄생, 죽음에서 부활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기 경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은 너무도 적습니다. 이는 거의 모른다는 말입니다. 결국 창조의 세계에 인간은 너무도 작은 존재입니다. 창조물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 존재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세상과 하늘과 땅의 조화와 균형을 따라 이루어가십니다. 교회의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이 질서와 법칙을 세우셨음을 인정하고, 따르는 지혜입니다. 나만 열심히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열심히 해도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확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지혜와 능력으로 균형을 이루게 하시며 다스려 가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와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을 우상시하고, 미신을 신앙이라 착각하며, 형식적 종교화에 있습니다. 우상화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욕망대로 기대하며 우상을 만들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맹신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고 싶은 대로 믿다가 마음에 만족이 안 되면 다른 신을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결단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때로 내 상식과 지식, 경험에 맞지 않을 때도 “예”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왜 ‘믿음으로, 때로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고 할까요. 인간의 상식에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손해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패배할 것 같으니 주저하고 굴복하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 순종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행하는 동기요, 믿음으로 행할 때 거듭났다고 합니다. 흔히 믿음을 영적인 눈이 뜨였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말씀을 듣게 됐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 영의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지혜를 따라 응답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모든 순간,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세상에 있는 환난과 풍파가 있고, 수고와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서야 할 자리에 서고,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며, 은혜와 평강의 복을 경험합니다. 신앙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봄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복으로 누리는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규동 목사

<동해제일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