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야기] 국군수도통합병원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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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던 신장결석증’

군의관은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서두르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국군수도통합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그곳은 여러 후송병원을 거친 군인들이 죽기 전에 가는 곳이었다. 그날 밤 나는 사경을 헤맸다. 열이 40도가 넘어 몸이 부글부글 끓었고,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당직 군의관이 밤새 이곳저곳을 진찰하더니 자신 있게 ‘스톤(stone)’이라고 외쳤다. 내가 그렇게 소원했던 ‘신장결석증’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진을 찍고 살펴봐도 돌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증상은 ‘신장결석증’인데 돌이 보이지 않으니 진찰을 하던 군의관이 굉장히 당황스러워 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응급실에 난리가 났다.

사람은 죽어 가고 병명은 찾아야 하니 군의관들은 마음이 급해져서 나를 붙들고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그런데도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었는지, 나는 24시간 내내 누워서 링거만 맞았다. 다음 날이 되자 열이 깨끗이 내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과 관찰’ 대상이었기 때문에 퇴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 달 반 동안 하루에 네 병씩 150병 이상의 링거를 맞으며 병원에서 지냈다.

국군수도통합병원 내과의 입원 병동에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군인들만 있었다. 환자 카드에는 군번, 성명, 병명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백혈병 내지는 암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내과에서 죽어 가는 청년들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기 직전인 사람들이라 복음이 더더욱 귀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구원을 받게 하려고 애썼다. 주일이 되면 휠체어를 끌어 주며 그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감사하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했다. 병원에 있는 교회에서 나에게 전도상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는 언제나 핍박이 있기 마련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들이 뼈만 남은 얼굴로 악을 쓰면서 나에게 “한 번만 더 전도하면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하며 폭력과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과 용기로 계속 전도하면서 병원 생활을 이어 나갔다.

입원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내과 의사가 나를 불렀다.

“그동안 너 아프지 않았다는 거 다 안다. 근데 네가 졸병이고 군 생활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편하게 지내라고 그냥 두었던 거다. 이제는 퇴원하고 복귀해라.”

‘내과 관찰’이라는 카드를 달고 한 달 반 동안 편하게 생활했고, 그 시간을 복음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공군본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나는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더 추가했다. 그건 바로 공군본부로 돌아가게 되면 공군본부 안의 병원(항공의학연구원, 이하 항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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