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어떤 제사인가?
제사는 제물만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만약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있는데 몰랐거나 나중에 알았다면 동생에게 양 한 마리를 빌려서 그 양을 제물로 드리면 될 것을 자존심과 교만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결국, 하나님께 거절당한 것은 그의 마음 때문이며 제물이 아니다. 그 후 가인은 ‘하나님이 내 제사를 거절하셨다’는 거절감에 사로잡혔고 그 분노의 표출로 아벨을 쳐 죽였다.
창세기 4장 8절의 “쳐 죽였다는 것”은 아주 비참하게 고의적, 계획적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죽인 이유는 잘 이해되지 않으나 ‘야샬의 책’을 보면 참고해 볼 수는 있다.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가인에게 물으실 때 하나님은 관계를 물어보시는 한편 가인은 아벨을, 재산을 나누는 대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빼앗기는 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가인은, 분노(죄)를 다스리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 4:7b 새 번역) 하며 죄를 이겨야 한다고 하나님은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으나 결국 형제를 죽이는 친족 살인자가 된다.
그의 후손들은 대부분 인간 중심적이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태도로 여러 세대 동안 살아왔다. 결국 가인의 제사는 육의 제사요, 인본주의적인 제사였다. 죄에 사로잡혀 분노에 눈이 어두워 인류 역사상 첫 살인자가 되며 저주를 받아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가인은 악한 자에 속했다고 했다. 우리도 욕망을 따르는 죄인이므로 눈만 뜨면 가인을 쫓아간다. 자꾸 아벨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는 소망이 있다. 성령의 힘으로 가인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아벨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자.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리는 제사 즉, 정성이 있는 제사와 의인의 제사와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신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최상의, 최선의, 최고의 예배를 말한다. 형식적인 예배와 참된 예배의 대조는 형제와 화목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마5:24) 라는 것을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매일의 삶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인과 아벨의 그 예물에 대해서 증언하심을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벨의 제사는 주님의 피의 예표로 구속사의 큰 그림의 예표를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드려지는 제사로 완전한 제사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드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먼저이고 그다음 제물임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