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창세기 1장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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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천지창조 이야기다. 1장 1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와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나눌 수 있다. 그러면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로 시작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를 대할 때, 성경의 첫 책을 대할 때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는가?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는 패턴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첫째 날에 무얼 지으시고, 둘째 날에 무얼 지으시고, 셋째 날에 무얼 지으시고’가 더 강조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 기본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피조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대로 된 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말씀대로 된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 보시기에 좋은 상태를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인해 보기 좋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말씀대로 순종해 있어진 상태는 보시기에 좋았지만, 말씀에 불순종해 어그러진 상태는 보시기에 좋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창세기를 대하는 바른 태도를 다시 정리해 본다. 첫째,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시작한 각 창조는 ‘그대로 되니라’로 완성되고,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끝이 났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에서 가치와 질서를 만드셨다. 우리 삶에도 혼돈과 공허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불순종과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 나의 공허와 혼란스러운 문제를 내어놓고, 회개하며 재창조해주실 것을 기도하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의 문제 가운데 새 길을 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나와 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뿐 아니라, 내가 만날 전도대상자의 삶의 문제와 영혼의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 천지창조는 그 어떤 이적과 기사보다도 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한다. 그런데 우리는 크신 하나님을 오히려 창세기 1장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본다. 크신 하나님을 크게 믿는 창세기 1장 다시보기를 제안하며,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크게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황순환 목사

<서원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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