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손에 땀을 쥐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삼국지와 유비, 조조, 제갈공명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요즘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삼국지 드라마를 접하고 나서 95편이나 되는 대하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 탄핵정국의 혼란한 정치 현실을 떠올리며 여러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어릴 때는 의롭고 선한 유비가 지략이 뛰어난 제갈공명과 함께 악당 조조를 물리치는 영웅담으로 삼국지를 읽었다면, 이제는 영웅들 뒤에 가려진 수많은 인물의 다양한 삶에 더 눈길이 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노숙과 주유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삼국지의 내용을 잘 아실 테지만,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격퇴한 후에, 동맹을 맺었던 유비와 손권 사이에 형주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난다. 주유가 형주에 남은 조조 군과 싸우는 사이에, 유비는 비어있는 형주성을 힘들이지 않고 가로채버린 것이다. 유비에게 따지러 간 손권의 책사 노숙이 어리숙하게도 공명의 말솜씨에 넘어가서, 나중에 촉을 손에 넣으면 형주를 돌려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빈손으로 돌아오자, 대도독 주유는 분노해 당장 전쟁을 일으켜 유비에게서 형주를 빼앗겠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저 사람 좋고 어리숙한 노숙이 공명에게 속아 넘어갔고, 주유는 공명을 시기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속 좁은 인물이라고 단정해 버린다면, 노숙과 주유의 전략적 판단의 중요한 차이점을 볼 수 없게 된다.
주유는 신의를 저버리고 동맹을 깨뜨린 유비 군을 공격해 형주성을 되찾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일이며 대의명분에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나라는 강하고 유비는 약하므로, 지금 유비를 제거해 후환을 없애는 것이 오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노숙은 유비가 비록 신의를 저버렸지만, 형주를 근거지로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눈감아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오나라를 위한 길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숙은 신뢰할 수 없는 약속이지만 모르는 척하고 받아 주는 넓은 도량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손권은 노숙의 의견을 따라서 형주를 유비에게 양보하고 동맹을 유지했지만, 만약 주유의 주장처럼 유비를 공격했다면 명분도 분명하고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주유가 승리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나라 입장에서는 주유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었을까? 당장은 오나라가 승리하겠지만, 유비가 패망한 후에는 오나라는 훨씬 강한 조조와 일대일로 맞서게 되고 결국에는 패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유비를 살리고 동맹을 맺어 함께 조조와 맞서는 것이 오나라에 가장 유리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노숙과 같이 너그럽고 역지사지할 줄 알며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치 세계에서도 유비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오나라를 살리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요즘 탄핵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오히려 부족한 것은, 시시비비의 정의를 위한 열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의 공감능력과 대국을 내다보는 넓은 도량일 것이다. 기독교계가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고 의무이지만, 사랑과 관용 그리고 공감이라는 참된 기독교 정신 위에 세상을 바로 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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