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살아오면서 꿈 하나가 있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고통과 시련의 시기나 때로는 편안한 안위의 순간에도 이 절대적인 희망은 늘 내게 희망적 견해로 다가왔다. 그것은 문인이 되어 내가 살아 오고 생활하고 희망하는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글을 꼭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문 형태의 글보다는 마음의 감정과 감성을 더한 심성이 갖는 매개체로 발상과 구성을 이루는 시로 승화시키려는 마음을 늘 한결같이 갖게 된 것이다.
어쩌면 절실한 마음 안의 이상적인 꿈과 세상을 관조하는 높이의 체험적, 경험적 바탕을 근거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나의 정신 안의 절대적인 희망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살아오면서 온갖 사연과 나름대로의 힘든 역경의 과정도 가지겠지만, 나의 삶도 대서사시적 태생적 인생으로 돌이켜 보면 한편의 드라마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좌절과 실의, 때로는 감동과 희열도 함께 했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고희를 훌쩍 넘긴 내게 축복과 영광을 준 생의 대단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하는 무한한 뜻과 보람은 생각만 해도 크나큰 희열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시의 형태를 갖춘 글을 써보았으나 웬걸, 천신만고 끝에 온 정성과 힘을 기울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놓고 보면 내 마음 깊이의 반도 차지 않은 졸작이 되기 일쑤였다.
내가 보기에도 문맥도 순서도 불분명한 시가 되곤 했다. 때로는 주제가 산만해 내용적 근거가 전혀 다른 시로 탈바꿈되기 일쑤였다.
오랫동안 고심 끝에 늦깎이지만 정식으로 문예창작교실에 입문해서 시창작 기본부터 습득해 다른 사람보기에도 부끄럼 없는 당당한 시인의 면모로 틀을 갖추고 싶었다.
여러 곳에 수소문한 결과 꽤 그 방면에 역사가 깊고 문학적 연륜과 입지가 상당한 시인 선생님이 운영하는 문예창작교실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시의 이론과 기법 기교가 처음 접하는 학문적 예술이라 결코 쉽지 않은 분야였지만 한 달 두 달 배우는 과정에서 날마다 조금씩 새로운 영역에 접근하며 시창작 강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사회적 기반과 정치적인 입문, 그리고 신앙에 바탕을 둔 대화와 경험, 더불어 각종 연설 좌담, 발표 등에서 축적된 일련의 여러 사안들이 큰 힘과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름대로 습작도 하고 시평을 듣기도 하며 어느 정도 세월이 더해 가는 동안 이론과 실기에도 문학적인 성숙도가 더해갔다.
그럴 즈음 의도대로 작품이 뜻대로 안 써지거나 본의 아니게 정신적인 집중이 잘 안될 때면 효율적이고도 알맞은 시어들이 잘 떠오르지 않아 작품의 완성도가 결여될 때는 짜증도 나고 권태기도 왔다. 나의 의도대로 잘 안되는데도 지도하는 선생님은 재능과 소질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근 2년간을 한결같이 개인과외를 하니 나 자신이 보아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믿기지 않을 수준에 근접하고 있었다. 과연 이 시가 내 작품인가 하며 때로는 가벼운 흥분과 기쁨으로 나 자신을 더욱 추스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그것은 더욱 큰 보람과 함께 감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내게도 감추어진 이런 소질과 재능이 있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러 사회의 다양한 단체를 이끌거나 여러 사회 지도층의 영역에서 활약하며 일면 연설하고 강의한 것이 많은 참조가 되고 체험적 순환의 바탕이 되어 빨리 글이 완성되는 근원인가 싶었다.
드디어 문학공부에 전념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후 『문예운동』지로 시인으로 등단하고 보니 너무나 감개무량했다. 정치도 그랬고 대학입학도, 그리고 문인으로의 등단도 모두 만학도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이 참으로 실감나게끔 온 전신이 뿌듯한 전율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후 『문학 세계』로 수필부분에도 등단하는 영광도 한꺼번에 안았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 첫 시집 『푸른 꿈과의 동행』을 2010년도 발간했으며, 두 번째 시집 『양지로서는 자유』를 2012년에 상재해 더욱 문학적 입지를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분들의 조언과 격려와 배려, 그리고 칭찬으로 한동 안 내가 겪은 늦깎이 문학수업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후 더욱 문학에 매료되어 시간만 있으면 시창작과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차츰 문학의 신비하고도 오묘한 깊이가 나 스스로도 의외라고 할 만큼 나의 시간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내게도 일면 문학적 소질과 재능이 일부 있지 않나 하고 자위도 해본다.
아마 이것은 선비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핏줄이 근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후 세계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세계문학상 시부문 본상을 2012년에 받는 영광과 부산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부산문학상 우수상을 2013년도 수상하는 보람도 함께 가졌다.
그리고 이후 문학적 입지는 나를 <사단법인 한국바다문학회> 부회장으로 활약하는 단초가 됐다. 나름대로 정치, 사회, 종교, 경제의 각 분야에 활약하며 작은 뜻과 보람을 성취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문학적 성취도가 내게는 인생 후반기에 잊지 못할 성과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크나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요즈음도 가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의 향수처럼 내안을 따스하게 하는 정신적 위안은 나만이 갖는 마음 안의 즐거움으로 소소 한 기쁨이 되고 있다.
양한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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