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를 선교교회로 이해하는 분들은 설립자를 언더우드(H. G. Underwood)로 보고, 민족교회로 이해하는 분들은 설립자를 서상륜(徐相崙)으로 본다. 그러나 씨줄과 날줄이 잘 조화를 이루어 옷감을 만들 듯 언더우드와 서상륜이 씨줄, 날줄이 되어 새문안교회라는 복음의 옷을 만들었다.
서상륜은 1849년 7월 9일 압록강 근처 평북 의주에서 대구 서씨 서석순(서필순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이라는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1852년 동생 서경조(徐景祚)가 태어났다.
부친 서석순이 34세의 일기로 콜레라에 걸려 별세하고 어머니가 별세한다. 이때 서상륜의 나이 14살, 서경조가 11살이었다.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어지고 두 형제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서상륜을 서당에 보내 한문, 한학을 익히게 했고 이 일은 후에 서상륜이 성경 번역자로 활동하는 기초가 된다. 당시 서상륜은 명필가로 알려졌다.
이 무렵(1872년부터)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매부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가 만주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로스 일행은 만주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전도하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기울어진 가세를 짊어지고 한반도와 만주를 오가며 인삼, 홍삼 장사를 하던 서상륜이 30세쯤 만주에서 열병에 걸려 큰 고통으로 죽게 생겼다. 서상륜의 친구들은 그를 아일랜드 의료선교사 죠셉 헌터 병원에 입원시킨다.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던 매킨타이어의 끈질긴 전도로 서상륜은 예수를 믿고 곧바로 존 로스에게 세례를 받는다. 서상륜은 매킨타이어 집에 머물며 존 로스의 복음서(누가복음, 요한복음) 번역 작업에 동참한다. 여러 한국 청년들이 번역 작업을 도왔기에 로스 번역으로 알려진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사실 「로스, 서상륜 팀역」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때부터(1882년) 서상륜은 영국 성서공회와 존 로스로부터 권서인(勸書人)으로 임명받고 한국인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한국인 전도자, 선교사 소위 「아름다운 발」이 된다. 당시 조선에서는 금서였던 성경을 들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 관문 「고려문」을 통과한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위험한 일이었다.
다른 권서인 이성하는 압록강변에서 발각되어 위험에 처해지자 누가복음 성경을 모두 불태워 그 재를 압록강에 뿌리며 눈물로 기도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지어다.」
서울의 최초 교회이자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교회 이야기를 하려면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큰 구원이란 뜻) 송천(송래, 솔래, 소래)리 한국 최초의 교회이자,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설립한 소래교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소래 뒷산 광산 김씨 선산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고 이 마을엔 사시사철 분출되는 샘과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서경조 초가집 사랑채에서 시작된 소래교회 설립 연도에 대해선 여러 설들이 있다(1883~1885년). 소래교회 자체는 1883년 5월 16일을 설립일로 기록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