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기도의 위대한 힘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몇 절을 살펴봤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매인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렸던 기적이 있었고(행 12:5-17)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해가 지도록 팔을 붙들고 있었기에 승리했다. 이는 곧 중보기도와 다름없는 그들의 진정한 믿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여호수아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출 17:8-13)
다윗은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여호와께 물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 이처럼 여호와께 묻고 대답하는 대화는 곧 기도였다. 또 유다의 4대왕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갔을 때였다. 그는 대적해야 할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3개국 연합군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아 자기의 군대 수로는 중과부적이었다. 오직 여호와께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전 백성에게 금식기도를 선포한 뒤 자기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승리로 이끄셨다.(대하 20:1-22) 이같이 여호와께 의지하는 기도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가난의 역사도 그러했다. 1950년에서 1980년 중반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돌이켜 보면 너무도 처절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서울이 완전 폐허인 잿더미로 변했고 농촌 들녘에도 쑥을 뜯어 배고픔을 달래기가 너무도 부족해서 깊은 산중에 가 채취해야만 했다. 시골 아낙네들은 20여 km 떨어진 깊은 산중에서 종일 쑥을 뜯어 자루에 넣어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군대의 행렬처럼 줄을 잇고 있었다. 배고픔을 달래려는 몸부림이었다.
교인들은 당시의 처절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매달려 기도했고 성경 말씀대로 교인들은 서로 위로하는 사랑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으면 끼니를 나누어 먹는 인정은 ‘이웃사촌’이란 우리네 속담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당시 우리의 삶은 물질로 이루어진 즐거움보다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이웃 간의 정이 더 큰 힘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교인들의 삶 속에 피어오르기에 교회는 나날이 부흥했다. 처음엔 대여섯 가정이 모여 출발한 교회가 10여 년이 지나면 의젓한 교회 건물이 우뚝 서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젖먹이 갓난아기와 태아까지 식구로 계산해 그 수효대로 벽돌 한 장 이상씩 자진 헌금했다. 교회 중직들이 과분한 금액이라고 말려도 기쁜 마음으로 헌금(출 25:2)한 것이라며 더 바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성도들의 비전(Vision)이 정부 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곧 새마을운동이라 여겨진다.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 이 노래가 확성기로 마음 곳곳에 울려 퍼질 때 국민들의 마음속엔 근면성실로 굳게 뭉쳤다. 성도들이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매달려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다. 오늘의 경제대국을 일으킨 근본정신은 ‘기독교정신’에서 비롯되었고 땀의 결정체로 이루어졌다. 모두 기도의 위대한 정신이 새마을운동을 성공시켰다고 필자는 확신하고 싶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