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가 세상이 온통 흥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 있는 겨울 밤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책’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작가는 ‘시장 끼’가 돌았던지 군고구마를 파는 노점상을 발견하고 그리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손수레 하단에는 “군고구마 4개 2천원” 이라는 글씨가 ‘삐뚤빼뚤 들쭉날쭉’ 씌어 있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군고구마 장수는 손님이 말을 걸기가 미안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의 아들이 다가오더니 “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그만 들어가세요. 제가 마무리하고 들어갈 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효심(孝心)이 깊은 아들이라고 생각한 작가는 아이에게 좋은 책을 한 권 사주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 하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 밤에도 아버지를 도와드리면 더욱 힘들지 않겠니?” 그러자 아이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힘들지 않아요.”
순간 작가는 아들이 ‘참으로 착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또 물었습니다. “혹시 학교에서 필요한 참고서 같은 책이 없니? 네가 너무 착해서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
그런데 그 아이는 짤막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필요한 책이 없는데요.” 낯모르는 사람한테서 동정을 받기 싫은 거로 생각한 작가는 “내가 책을 주는 게 싫으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대답이 작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매일 이 세상에서 가장 감명 깊은 책을 읽고 있는 걸요.” 작가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군고구마를 팔고 있는 아버지가 매일 좋은 책을 사준 덕분에 아들이 저렇게 올바른 정신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작가가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네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책이 뭐였니?” 전혀 상상하지 못한 아이의 대답에 작가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어떤 책보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그 떨리는 손으로 ‘삐뚤빼뚤’ 써 놓으신 《군고구마 4개 2천원》이라는 문구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느꼈어요. 저 한 줄의 문구 안에는 아무리 자신의 몸이 힘들어도 끝까지 가족을 살리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아버지의 저 글을 볼 때마다 마치 책장을 넘기듯이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이 말에 작가는 충격을 받고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책’을 쓰고 싶다면 ‘머리’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써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 작가는 문단의 중견 작가로 가장 순수한 사랑을 소설로 펼쳐 보여주는 김종원(1960~ 울산)이라는 작가였습니다. 그 아이야 말로 매일 매일 최고의 감동을 주는 책을 읽고 있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아니었을까요?
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최고의 책은 노벨상 수상작도 아니었고 수백 년 동안 사랑받는 인문 고전도 아니었으며 수천만 권이 팔려나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삐뚤빼뚤’ 쓴 “군고구마 4개 2천원”이란 한 줄의 글, 그것이 어떤 책보다 더욱 더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정상적이 아닌 아버지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정상적으로 몸을 거동하지 못하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 박사가 물리학에 전념한 것이 『루게릭병』을 앓게 된 후라고 합니다. 회갑을 맞은 그는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자신의 장애 때문에 테니스 등 다양한 취미생활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 장애를 이겨냅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의 상처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