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향기] 출세 ‘꿈’ 내려놓고 일터 선교사로의 ‘사명’

Google+ LinkedIn Katalk +

1986년 한미은행(현 씨티은행)내 기독선교회 창립,

27년 동안 1천명 이상 전도

공세봉 장로(성심교회)

전국원로장로회 회장 이홍익 장로는 공세봉 장로(평북노회 성심교회)를 “평북노회 브레인”, “선교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소개했다. 공 장로는 1986년 한미은행(현 씨티은행)에 처음 기독선교회를 창립했고, 선교회 총무 12년, 선교회장으로 15년 역임했다. 이후 2012년 은퇴까지 27년 동안 1천 명 이상의 직원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주변 광화문 일대 수 많은 직장인을 전도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시작한 직장인성경공부선교회(BBB:Business Bible Belt) 활동은 직장을 ‘성공지’에서 ‘선교지’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평생 사명인 ‘성령충만한 일터 선교사’를 붙잡고, 그리스도 제자 세우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공 장로를 지난 2월 18일 본보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너진 탄탄대로

공세봉 장로는 살면서 드라마가 같은 일을 몇 번 겪었다. 공 장로의 어린 시절 미군 부대에 다니던 부친은 철원 일대에서 광산도 운영했으나, 지인의 배신으로 광산업이 완전히 실패하게 됐다. 이후 어머니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교회 새벽종을 울리며 남편과 2남 2녀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부모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세 살 터울인 두 형제는 믿음 좋은 모범생으로 자라, 형(공세권)은 고려대 정외과를, 공 장로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형은 SK에 입사했고, 공 장로도 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면서 ‘이제 우리 가족 앞에는 탄탄대로만 있겠구나’ 싶었다.

한참 고시 공부를 하던 27세 어느 날, 형은 대학 동기들과 청평유원지로 야유회를 갔다가 배가 전복돼 사망했다. 형이 결혼한 지 3주 만의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장남을 잃은 어머니가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게 되자, 공 장로는 어머니도 보살피고 가정 경제에도 보탬이 되기 위해, 사법고시 공부를 잠시 접고 1년만 직장인이 되기로 했다.

1986년 당시 금융권에서 한미은행 연봉이 ‘탑’이었기 때문에 한미은행에 입행했지만, 이후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고 직장 환경도 변하면서 법관의 꿈을 내려놓게 됐다.

초고속 승진에서 투자 실패까지

입행 후, 공 장로는 가장 먼저 기독선교회를 창립했다.  창립 후 약 1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본점 강당에서 매주 수요일 구리 행복한교회 임훈식 목사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업무적으로도 최선을 다해, 1988년 은행장 추천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 한미은행 대표로 파견돼 맡은 임무를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1990년 대리로 승진했으며, 대리 승진 6개월 만에 법규과장 직위를 받았고, 30세에 이사회 간사로, 35세에 법규부문장으로, 30대 후반에는 법무실장이 됐다.

공 장로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가까이서 은행장을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은행장의 꿈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췄어도 당시 출세를 위해선 관행처럼 ‘뒷돈’이 필요했다. 당시 형편으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에 1997년 5월 큰돈을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은행의 잘 나가는 법무실장으로 주식투자도 성공할 것이라 믿었지만, 몇 개월 후 IMF가 몰아쳤고 주식은 하한가를 거듭 치면서 약 3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당시 한 달 이자가 법무실장 월급보다 많았다.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십일조와 부모님의 생활비를 거르지 않았고, 이를 위해 추가 대출까지 받는 등 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7년 12월 앞이 깜깜해진 공 장로는 오산리기도원 기도굴을 찾아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받은 응답은 첫째, 주식을 처분하고 다시는 하지 말 것. 둘째, 전도훈련을 받고 ‘일터 선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공 장로는 즉시 두 가지 응답을 실천했다. 또한 두 가지 방법 외에도 아내 한인선 권사의 내조와 기도 덕분으로 깊은 수렁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IMF 때 많은 가정이 경제적인 이유로 깨졌지만, 아내는 묵묵히 인내하며 새벽기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5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1남 1녀를 훌륭히 양육했습니다. 지금도 98세 시아버지(공민현 은퇴장로, 성심교회)를 모시고 사는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예배 후 가족 및 BBB제자들과 함께.

BBB 훈련 13주 동안 250명 전도

1999년 3월 공 장로는 직장인성경공부선교회(BBB)에서 새생명훈련(NLTC)을 시작했다. NLTC 1단계 총 13주를 진행하는 동안 1주에 평균 20명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총 250명을 전도했다. 은행 안에서 점심시간 및 업무 후 시간을 이용해 4영리로 복음을 전하며 기대 이상의 열매를 거뒀다. 한 번은 10분의 시간을 내어 총무부 강 대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주에 강 대리는 물론 아내와 아이까지 집 근처 교회에 출석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공 장로는 같은 팀, 같은 층 직원 등에게 매년 1회 이상 복음을 전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법무팀 김성필 과장을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무려 10년 동안 복음을 전했다. 10년이 되던 해, 다시 한번 복음을 전하자 김 과장은 “지난번에도 하셨는데 또 전하시느냐?”며, “큰아버지가 스님”이라고 답했다. 그때 공 장로는 “김 과장과 큰아버지의 구원은 별개”라며, 4영리를 전했다.

이후 김 과장은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고, 공 장로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협력했다. 수년 후 미국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김 과장은 “미국 한인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며, 공 장로의 두 손을 잡고 감사를 전했다. 현재 김 과장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다.

■ 사명, ‘성령충만한 일터 선교사’

씨티은행(2004년 한미은행 인수) 디렉터이자, 기독선교회 회장, BBB 광화문모임 대표로서 일과 복음 전도로 바쁘게 지내던 2006년 어느 날, 공 장로에게 또 한 번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졌다.

어느 직원의 장례식에서 은행장을 비롯한 많은 임직원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은행장은 “오늘은 술 한잔 하게나”라며, 공 장로에게 빈 그릇에 소주를 가득 부어 건냈다. 당시 공 장로는 부행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기에, 짧은 3초 사이에 ‘하나님-부행장 승진’이 30번은 저울질 하는 기분이었다. 3초 후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면서 거짓 되게 행동 할 수 없다. 기독선교회 회장으로서 롤모델이 돼야 한다’는 마음이 이겼고, 공 장로는 “콜라 주세요”라고 답했다. 그 순간 은행장이 술 그릇을 던졌고, 공 장로의 양복은 술로 뒤범벅이 됐다. 그날부터 6년 후 퇴임까지 더 이상 승진은 없었지만, 그날의 일이 은행 안팎으로 퍼지면서 먼저 전도한 250명과 더불어 총 1천 명 이상의 직장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또한 ‘성령충만한 일터 선교사’로의 사명을 더욱 붙잡게 됐다.

“성경에는 영적 계보로 ‘바울-디모데-충성된 사람들-다른 사람들’ 총 4세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회사 기독선교회 및 BBB 광화문모임 대표로 복음을 전하고 양육 1세대인 저로부터 시작된 영적 계보가 현재 6세대까지 세워졌습니다. 씨티은행 기독선교회의 경우, 제가 1대 회장 퇴임시 저의 순원인 정종남 형제가, 정종남 형제 퇴임시 저의 순원인 김지영 자매가, 김지영 자매 퇴임시 김 자매의 순원인 김옥기 자매가 회장직을 위임하면서 영적 4대를 이뤘습니다. 지금도 씨티은행 기독선교회는 매주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6세대 제자 양육을 이룬 BBB 영적계보.

하나님이 보내주신 일터가 선교지

공 장로는 씨티은행 퇴직 후 경남은행 M&A 임원으로 스카우트 되어 MBK 유치에 공을 세운 후, 현대저축은행 감사위원장, 리무역 상임감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가스기술공사 이사로, 일터 선교사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을 우선 잘해야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이 적기에, 공 장로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 더 집중해서 일하며 ‘업무 전문가’로서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

“일터를 옮길 때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면접을 볼 때면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출세해서 남보란듯이 살고자 했던 저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보내주시는 일터에서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 장로는 BBB 광화문모임를 통해 양육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랑한다. ‘영적 아들’이자 강북1지구 대표직을 이어 받은 안종범 형제, 광화문모임 대표인 김지영 자매 등 제자(순원)들이 “순장님이 가신 길만 따라가면 된다, 아무 걱정 없다”고 고백할 때 가장 큰 감사와 보람을 느낀다.

성심교회 전교인 수련회.

공 장로는 아버지 공민현 장로(98세)의 대를 이어 성심교회(김신일 목사 시무)에서 2002년 장로 장립했다. 장녀는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도사로 사역하며, 동대학 학부를 졸업한 장남은 졸업 후 수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 장로는 “4대 기독교 가정으로, 참으로 화평하고 좋은교회에서 좋으신 목사님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것에 감사하다”며, “저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한 후, 하나님께서 ‘일터 선교사’로서의 삶을 보여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셨다. 앞으로의 걸음이 기대되는 이유다”라고 고백했다.

/박성희 기자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