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먼저 하는 사람이 만드는 따뜻한 변화
장로의 역할,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나아가다
요즘 청년들이 버릇이 없고 인사성이 안 좋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사를 안 하는 습관으로 굳어있는 건 나이 든 사람들 세대이다. 인사란 누가 먼저 해야 된다는 법이 없는 것인데, 그냥 나이 많은 쪽이 먼저 하면 어떤가? 밝게 웃으며 인사하면 더욱 좋다. 그러면 상대가 누구든, 나이가 몇 살이든 반드시 밝은 인사로 반응이 온다. 우리들 문화에는 나이 많고 상급자가 되면 인사받기를 기다리는 습관으로 굳어있다. 우리 문화 속에서 수백 년 동안 굳어져온 문화이기는 하다. 이제는 벗어나려고 노력해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식당에서 주문할 때 키오스크가 잘 안되면 주위의 젊은 사람에게 “이거 좀 해줄 수 있어요?”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매번 흔쾌히 도와준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안내도 더 해주고, 더 도울게 없나 한참 뒤까지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뿌듯한 미소를 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해서 젊은이들과 소통을 해보는 습관을 가지고 변하는 사회 속에서 들어가보는 용기를 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도 않고 지레 그들이 귀찮아할 것이라고,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순수하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면 순수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 소통이 시작된다. 평범하고 쉬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서 대화의 길이 열린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럴 때 자연히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진솔하게 부담 안주고 물어볼 수 있는 화술이 익숙해지면 누구와도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다행히도 그런 대화를 잘 한다. 그래서 즐겁게 소통할 일이 많다. 하루하루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
참 좋은 세상을 즐겨야 한다. 참 좋은 세상을 누려야 한다. 노인이 되었다고 뒷방으로 물러나 젊은 세대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정말 노인이 된다. 우리 세대가 길러낸, 참으로 자랑스럽고 유능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우리도 누려야 한다. 참여해서 함께 그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내 소속감을 찾을 수 있으면 늙어도 행복하다.
장로의 할 일
오랜 담을 허무는 작은 사건
살면서 가져 본 여러 이름과 직함이 있지만 그중에서 ‘장로’라는 직함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소망교회 45년 역사 중 42년 동안 소망교회 장로로 섬기면서 내내 행복했다. 1기 장로로 선임돼 28년을 시무했으며, 지금은 은퇴한 원로장로로서 계속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축복이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복되기만 한 직분이었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있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소망교회 분란 사태를 꽤 많이 알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갈등과 고통을 극복했기에 더욱 복된 직분이었고, 자랑스러운 인생이다.”
2013년 초, 소망교회 제2대 목사 취임 후 당회에서 심한 갈등과 충돌이 빚어진 지 7년째가 된 시점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극복되고 해소돼 안정되어 가던 시기의 일이었다.
소망교회 은퇴장로이신 이상득 장로가 옥고를 치르고 나오셔서 십여 명의 장로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이 장로가 여러 장로들을 보고 싶다고 해 신년 하례도 할 겸 한번 모이자고 얘기가 됐다. 다만 구체적인 약속은 없이 자리가 파했다.
아마 그대로 헤어졌으면 아무래도 금세 자리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중 여러 명이 식사비를 계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상득 장로가 먼저 계산을 해버리셨다.
모두가 미안한 마음이 됐는데 참석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광석 장로((주)참존 회장)가 “저희 회사 근처에서 다시 한번 식사 모임을 하시지요”라고 제안했다. 스무 명 정도 모아보자는 의견이었는데, 내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내가 은퇴장로회 회장이기도 해서 모든 회원 장로들에게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상득 장로가 여러 장로님들을 보고 싶어 하니 모이자는 내용이었다.
이 장로는 정치를 하느라 교회 시무를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편으로 갈라질 틈이 없었다. 말하자면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참석하겠다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모일 생각이었는데 희망자가 많아져 참존 이벤트홀로 바꿨다. 그렇게 해서 2014년 1월 14일 (주)참존 사옥 6층 이벤트 홀에 무려 74명의 은퇴장로들이 모였다. 당시 은퇴장로가 90여 명이었으니 거의 대부분 참석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도 준비는 철저하게 돼 있었다. 원탁 테이블을 배치하고 도착한 장로들에게 모두 명찰을 달아준 뒤, 각자의 자리에도 명패를 붙였다. 끼리끼리 앉지 못하도록 했을 뿐더러 껄끄러워할 만한 사람들을 일부러 같이 앉도록 했다.
최고 수준의 서빙과 고급 한정식으로 기분 좋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 뒤 예배를 시작했다. 목사님은 모시지 않았고 우리들끼리 순서를 맡아서 진행했다. 전체 사회는 내가 맡았다.
이상득 장로는 그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탕자는 배가 고파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는데, 내가 감옥에 있어 보니 다름 아닌 내가 탕자였더라”는 내용이었다.
정치한다고 장로임에도 시무를 제대로 못했고, 전국의 많은 교회를 방문하긴 했지만 표를 보고 간 것이었다고 하셨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며 앞으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셨다. 이어서 류태영 장로(전 건국대 부총장)가 덕담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사이였는데, 지난 7년간 아웅다웅하다가 이렇게 서먹해졌습니다. 앞으로는 더 좋아집시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