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전국 사찰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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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 무슨 불교사찰 순례냐고 핀잔 들을 것을 각오하고, 올봄에 전국의 유명 절들을 한차례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밥상을 마주한 자리에서 아내에게 계획을 알리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불교 사찰들은 멀리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민족의 첫째가는 문화재, 새로운 용어로 국가유산(National Heritage)임을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니 아름다운 절들을 생전에 쭉 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는 상관없이 큰 의미가 있지요. 수도권에 산재한 27개 왕릉이 지난 2009년 한 묶음으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듯이 전국의 사찰들도 불국사와 석굴암에 더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될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오래전 검정색 교복을 입고 다니던 고등학교시절부터 우리는 방학이면 일삼아 절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경제가 어렵던 때라 집에서 쌀을 배낭에 담아 메고 털털거리는 시외버스에 올라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장성 백양사, 순천 송광사, 하동 쌍계사로 찾아가서 절 안팎을 쏘다니며 놀고 때로는 일손을 거들기도 하면서 며칠씩 지내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대찰들은 대개 명산 깊이 자리하고 있기에 자연과 친해지며 호연지기를 기른다고 기세를 올렸고 절 주변에 묵을 때는 가지고 간 쌀을 내놓으며 밥값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청소년들이 스키를 울러 매고 슬로프에 오르거나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고 하겠지만 그 옛날 우리에겐 사찰 순례 정도가 최고의 낭만이었습니다. 

장성해 직업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면서 이 절에서 저 절로 마치 탁발승처럼 유랑해보는 기회를 언제 만들어볼 수 없을까 꿈꾸었습니다. 어느 등산가가 히말라야 14개 고봉을 차례차례 정복해 가듯이 나도 수첩에 올린 유명 사찰들을 꼭 다시 한바퀴 돌아오리라 다짐하면서 나이를 먹고 먹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이제는 일에 매인 몸이 아니니 ‘이것을 실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순방을 위한 교통수단인데 내 계획은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1978년 취득한 운전면허를 지니고 2016년 출고 자가용을 손수 운전해 대략 2천여 킬로미터를 주행하는 것이 사실은 이 여행의 핵심입니다. 동반자를 구할건지 단독여행을 할건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끓어오르는 에너지로 터질 듯했던 고등학생이 무엇에 이끌려 천년 역사를 품고 정적에 잠겨 있는 산사들을 찾아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종교적 구도의 발걸음은 물론 아니었을 터인데. 그때 우리를 맞아준 깊은 계곡의 울창한 수목, 기암괴석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산간수와 그 자연의 음악, 절 집의 굵은 기둥들과 위에 무겁게 얹힌 검은 기와지붕, 그리고 새벽의 목탁소리… 이 모든 것들은 60-70년이 지난 오늘도 그대로 거기에 있으면서 이제 인생의 자전과 공전을 거의 마쳐가는 이 사람을 위로하리라 믿습니다. 

절에 가면 아마도 대웅전 앞마당 섬돌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기게 되겠지요. 바깥 세상과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잠시나마 머물면서 내 믿음의 깊이를 스스로 측정해보고 이곳에 와서 부처님께 절하며 기도하는 불도들과 나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 할 것입니다. 다같이 생명의 은총을 누리다가 어찌하여 택하심을 받게 되었는지 무조건적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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