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싹튼 남원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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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고을로 이름난 남원에 광한루원이 있다. 광한루원 안에 보물로 지정된 광한루가 있다. 어느 봄날 방자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광한루에서 이몽룡 도령은 멀리 그네 타는 춘향 모습에 반한다. 그 춘향을 이몽룡은 방자를 시켜 불러오게 했으나 남녀구별이 엄격한 그 때 춘향은 방자를 물리치고 향단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날밤 책 읽기를 그만두고 이도령은 춘향집을 찾아갔다. 퇴기 월매의 환영 속에 이도령은 미인 성춘향과 사랑을 나누었다. 남원부사 아버지 몰래 이도령은 밤마다 춘향집에 살았다. 이도령의 아버지 남원부사의 서울 전근으로 안타깝게 이도령 성춘향 두 연인도 이별을 맞았다. 오작교 다리 위에서 이몽룡은 옥반지를 춘향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춘향은 손거울을 선물했다. 성춘향과 눈물로 이별하고 상경한 이도령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전라도 암행어사가 된다. 이몽룡과 이별 후 남원에 색마부사 변학도가 와서 춘향에게 수청을 명령했으나 정절을 지키다가 옥에 갇혔다. 춘향전 소설의 절정은 변학도 생일날 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또장면이다. 춘향은 곧 석방되고 극적으로 일구월심 그리던 임 이몽룡을 반갑게 만난다. 춘향전은 영국작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와 줄리엣’ 작품과 비견할 정도의 명작이다. 그런데 이 춘향전은 고교 국어교과서에 작자 연대 미상작품으로 되어 있었다. 이 작자 연대미상인 춘향전의 저자가 남원부사 산서 조경남(1570-1641)으로 연세대 명예교수 설성경 박사의 깊은 연구로 2001년도 서울대 출판부에서 펴낸 저서 ‘춘향전의 비밀’ 내용에서 밝혔다. 설 교수는 연세대 재학 중에 나손 김동욱 교수 연민 이가원 교수에게 춘향전 강의를 들으며 논문지도를 받았다.

서울 동교동에 나손인문학연구실을 두고 꾸준히 인문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춘향전 저자 산서 조경남은 자기 후임으로 온 성안의 남원부사를 맞으며 그 아들 성이성을 1607년부터 1611년까지 교육시켰다. 산서 조경남은 남원을 지킨 의병장이요 의병장 중봉 조헌의 제자이기도 하다. 성안의 남원부사가 광주목사로 부임해가자 그 아들 성이성과도 헤어졌다. 성이성은 경북 영주에 계서정 공부하는 집을 마련하고 공부에 열중했다. 산서 조경남은 실존인물 성이성을 춘향전 남자 주인공을 삼고 성춘향은 설화 중에 정절 있는 여성을 골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은 물론 세계적 명작의 염정소설을 남긴 것이다. 소설속에 이몽룡 암행어사가 쓴 칠언절구의 한시는 산서 조경남이 지은 것이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옥반갸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춘향전 속의 이 한시의 풀이를 보면 ‘금항아리의 아름다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같은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소리도 높다.’ 이 칠언절구 한시는 탐관오리를 척결하는데 배경이 되는 경고의 말이요 정의와 질서를 일깨우는 시의 말이 아닐 수 없다. 독자에게 교훈적 가치를 일깨우는 명시로 사상의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춘향전은 소설로 읽어도 영화, 연극으로 봐도 판소리로 들어도 재미있는 소설작품이다.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광한루원은 황희(1366-1452) 정승이 충령대군의 세자책봉을 반대하다가 태종으로부터 남원에 유배되어 요천강변에 광통루를 짓고 살았다. 이 광통루가 광한루의 시초가 된다. 세종은 황희를 다시 영의정으로 불렀다. 1444년 정인지가 광한루라 이름 짓고 송강 정철이 광한루 호수에 삼신산을 만들었다.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이 싹튼 광한루는 국보 후보로 추진 중에 있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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