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봄의 전령인 경칩과 춘분이 들어 있다. 경칩(3월 5일, 驚蟄, Awakening of insects)은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절기이며, 춘분(3월 20일, 春分, Spring Equinox)은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는 시점이고, 이후 낮이 점점 길어진다’.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새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 말씀은 봄이 시작하는 이 시점에 딱 맞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2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다. 첫째: 구약의 율법주의와 교훈에 대결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 율법을 서술적으로 가르치셨다. 이것을 산상보훈이라 한다. 둘째: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유대교의 전통적인 신조, 교훈, 예배의 제도의 울타리를 넘어 자유롭게 말씀하셨는데, 비유로 하셨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지형지물(천지만물)을 이용하셨다. I. 그러면 비유란 무엇인가? 비유의 성경적 원어로는 헬라어 파라보네(παραβολη´ , parable)를 의미하며, ‘교훈을 목적으로 어느 한 가지를 다른 것 옆에 놓아 설명하는 것’이며(공간복음48번, 히9:9, 11:19), 다른 말로는 ‘어떤 실체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꾸며진 것’을 말한다. II.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비유로 그 많은 교훈을 말씀하셨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서 심판을 자초하지 말라고 하셨고, 둘째는 구약의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III. 예수님은 무엇을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첫째: 바로 천국이다. 이 천국 비유야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세상에 전파되며,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오늘 우리가 같이 봉독한 말씀(Passage)은 막연한 천국에 대한 설명을 보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오늘 비유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 하는 것이 아니고, 비유 속에 담긴 비전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IV. 비전(꿈)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비전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한다. 비전이 있는 자는 삶에 생기가 있고 비전을 잃으면 삶의 의욕조차 상실하기 때문이다. 비전은 삶의 진보를 가져온다. 비전을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한다. 첫째: 야망(Ambition)이다. 야망은 내 자신(육신)으로부터 나온 내 중심적이며 내 자신이 동기부여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강한 의지가 있다. 이 야망이 이루어지면 결국 내 자신이 영광을 받게 된다. 둘째: 비전(Vision)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나 이상을 말하는데, 이 비전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하나님을 통해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 동기를 부여받고, 이 비전이 이루어 지면 많은 선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열매들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임을 일컬음 받게 된다. V. 그렇다면 겨자씨 비유는 우리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가? 4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작은 것이 커지는 비전이다. 서양속담에 Small is beautiful-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겨자씨는 성경에 나온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씨다. 700-800개를 합치면 1g이 된다. 이 씨앗은 갈릴리 평원에 널리 서식하며 1년생으로 3-4m까지 자란다. 겨자씨가 심겨져 죽고,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인다고 했다. 천국의 성장이 처음에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 놀랍게 확장될 것이다.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당시에는 미미한 존재인 겨자씨와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인구 80억 중에 30-40억의 인구가 주의 자녀가 되어 날마다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도 천국의 복음은 확장일로에 있다. 둘째: 변화의 비전을 우리에게 준다. 겨자씨는 1년생 풀(나물)의 씨앗이다. 그런데 이것이 변해서 나무가 된다는 사실이다. 주께서는 비전을 가지고 변화된 자를 들어 쓰신다. 시몬 베드로가 그랬고(갈대에서 반석), 사울도 그랬다(사울에서 바울). 물이 변해 포도주가 되었다. 우리도 우리의 자취를 뒤돌아보며 지난날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변화의 삶이 될 때 주님은 우리를 들어 사용하신다. 겨자씨가 그대로 있으면 나무가 되지 못한다. 변화될 때 비로소 나무가 된다. 셋째: 섬김의 비전이다. 본문 말씀의 겨자씨는 아주 보잘 것 없이 작은 씨앗이지만, 4가지의 섬김을 볼 수 있다. ①시간이 지난 후에 나무가 되어 새들에게 깃들 곳을 제공해 주고, ②그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나와 다음 세대를 잇게 한다. ③사막의 뜨거운 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그늘이 되어 휴식처가 되며, ④가을엔 추수해서 겨자가루가 되어 사람들의 미각을 돋구어 준다. 섬김의 자세가 크면 클수록 비전이 있고, 예수님의 임재를 오랫동안 느낄 수 있다. 제자의 수를 보면, 12명→70명→500명→3천 명→5천 명→허다한 무리→구름떼처럼→전 인구에 3-40억이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숨기시며 섬김의 자세로 살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온 인류의 그늘이 되셨다. 넷째: 열매 맺는 비전이다. 겨자씨는 사막의 뜨거운 폭풍과 밤의 찬서리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갈 때 열매를 맺고 사람들에게 그 좋은 열매를 공급한다. 씨앗이 썩어지고 죽는 것은 바로 열매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가 필요하다. ①우리 자신이 죽어야 한다(요12:24) ②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시 126:5-6). 봄에 씨를 많이 뿌리자. VI. 결론: 잠언 29:18절에 보면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다. 분명히 겨자씨 비유의 비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준다. 1. 작은 것이 커지며 2. 변화와 3. 섬김과 4. 열매를 맺는 확실한 비전이다. 세상사람들이 세상이 암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암울함속에서도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지의 세계인 우리의 미래의 비전을 위해 하나님께 조용히 묻자(We have to ask to God=What shall I do for you?).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우리의 무엇을 사용하시는가? ①God uses our worth =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사용하신다). ②God uses our experiences=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들을 사용하신다). ③God uses our pray=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신다). ④God uses our pain=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사용하신다). 이 겨자씨의 비유의 비전이 여러분과 저의 것이 되어 주님께 칭찬 받는 모두가 됩시다. 할렐루야!
신동실 목사
<산서교회, 한일장신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