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용기(1909-1988) 장로는 일제시대 농촌 경제부흥의 이상촌 농촌운동에 20대부터 소망을 두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양주 고향에 세워 일생을 몸바쳐 운영해 왔다. 아들이 이어 발전시키며 피교육자가 70만이 넘는다. 1970년대 중앙여고 제자 5명과 학교 방문했을 때 사위 교무주임이 학교시설을 다 견학시켜 주었다.
어느 교실에는 깡패가 회개하고 돌아가며 자기가 쓰던 쇠갈고리도 두고 갔다. 감동 받은 피교육자 혈서편지도 있었다. 또 한번 학교 방문시에는 김용기 장로를 직접 만났다. 새마을농촌운동을 꿈꾸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용기 장로를 찾아온 것이다. 학교 설립정신, 교육활동, 소득증대 활동 등 다양하게 학교운영 실태를 알려 드렸다. 그날 점심은 빵이었다. 식단 개량을 위해 점심이 빵임을 설명하고 감사기도를 5분 했다. 다음날 일간 신문에 빵 한조각 두고 식사기도 5분은 길었다는 비판기사가 나왔다고 했다.
가나안농군학교 가나안 기독교정신을 본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농촌은 물론 도시까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정신을 교육해 소득증대를 이루고 나라가 잘 살게 만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정신노래도 작사 작곡해 온 국민이 다 부르게 했다. 4절까지 있는데 1절만 보기로 한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정신 노래는 푸른동산, 부자마을, 새조국을 만들자로 이어 4절까지 부르게 된다.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정신과 기도의 힘이 새마을운동의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김용기 장로는 어느 목사가 사놓은 산이 악산으로 교회부흥이 없어 목숨 걸고 팔려는 원주시 신림면 땅을 어느 세 분 장로의 힘으로 사서 그 불모지 땅을 가나안농군학교 교육을 받은 군인들의 협력을 얻어 불모지 산과 땅을 옥토로 만들어 원주에 제2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했다고 우리 합신교단 장로회가 수련회 행사를 열 때 말씀해 주셨다.
1966년도 필리핀 막사이 사이상을 받았을 때 정부가 지원해 주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조금 도와 주고 간섭이 심할 것을 알기 때문이라 했다. 일체 외부 도움을 안 받는데 한신장군이 자진해 밀어붙여 식당을 하나 지어 주어 기증 받았다고 했다. 한신장군이 가나안농군학교를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와서 교육받고 있는 부하들이 식당이 없어 먼지 나는 마당에서 식사하기 때문에 한신장군 부하들을 위해 식당을 짓는다고 하며 건축한 식당 건물하나가 외부 찬조 건물이라 했다. 가나안농군학교에 입학하면 신발 벗는 법, 비누 쓰는 법, 혁대 매는 법 등 인생 기초교육부터 실시한다고 했다. 다른 종교내용을 알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에 불경을 다 읽어보니까 선을 추구하는 내용은 기독교와 같으나 불경은 끝에 가서 구원이 없는 것이 기독교와 차이점이었다고 했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에 가나안농군학교가 있을 때 김용기 장로는 가나안 복민의 생활헌장을 발표했다. ‘우리 겨레는 이때 이렇게 살자’를 비롯 몇가지 삶의 가르침을 제시했다. 한국 대표적 모범 장로는 한국의 슈바이처 성산 장기려(1911-1995) 박사, 한국의 간디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 일가 김용기 장로 이 세 장로가 기독교계 귀감이 되는 장로이다. 가나안농군학교 가나안 정신은 근로와 봉사 희생이 교육이념이다. 새마을정신과 함께 길이 빛나길 기도한다. 새마을정신 노래도 꾸준히 잘 불러 나라 길이 빛내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