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병장 제대하는 날이 네 제삿날이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공군 병원에서 만나 내게 진단서를 끊어 준 병원 수송대 책임자 강 상사가 내가 백사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사정이 궁금했던 강 상사는 백사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백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그렇게 병원에 오고 싶다는데 좀 가게 해주지, 왜 그렇게 애를 잡습니까?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그냥 데려가게 해주세요.”
친분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강 상사가 나를 왜 그렇게 감쌌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근무지, 항의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급차를 운전했다.
병원 수송대 내무반에 들어가 보니 이곳 또한 쉬운 곳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제대를 앞둔 박 병장, 그리고 나보다 두 달 먼저 입대한 일병이 두 명 있었다. 그런데 몇 명 되지 않는 내무반에 살기가 돌았다. 박 병장이 밤마다 두 일병을 불러내서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박 병장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눈에 독기가 흘러서 존재만으로도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박 병장에게 다가가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밤마다 영어를 가르쳐 주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된 박 병장은 나와 함께 교회에 나갔다. 믿음이 깊어지고 나서는 엄동설한에도 새벽 기도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복음의 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독기와 폭력, 욕으로 가득하던 그의 삶에 말씀과 찬양이 자리 잡게 되었고 구원의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매일 밤 행사였던 구타도 사라졌고 두 일병도 편안하게 군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평화롭기만 할 줄 알았던 내무반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박 병장이 변화돼서 군 생활이 편해졌으니 내게 고마워할 것 같았던 두 일병이 오히려 나를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졸병 주제에 병장과 친하게 지내고, 달게 자고 있으면 새벽에 교회 간다고 부스럭거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일만 되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구급차에 태우고 교회에 가는 것도 거슬린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두 일병은 병장이 나와 함께 교회에 다니니 뭐라 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이를 갈았다.
“박 병장 제대하는 날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 “박 병장 제대하면 교회 다니는 것도 끝이야.”
두 사람은 이렇게 나를 협박했다. 그들은 박 병장이 제대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도 그 날짜를 기억하는데 6월 30일이었다. 나는 그날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떨렸다. 반대로 이 두 일병은 이를 갈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들의 제대 날짜보다도 그날을 더 기다렸던 것 같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