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하고 그런 극적인 체험 없이 평탄하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대부분은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겪기 마련이다. 똑같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누구는 지혜롭게 헤쳐나오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오히려 인생역전의 새 삶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수렁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이 승승장구 잘 나가고 세도가 등등할 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극적인 장면은 성경 어느 구절 못지않게 드라마틱하고 은혜로운 부분이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상황에서 바울은 그의 냉철한 이성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귀에 들리는 예수님 목소리에 순종하며 무기력하게 따라갔다. 그의 이성은 그 순간 아무 쓸모가 없었고 그가 전혀 의지하지 않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를 돕는 사람들의 손에 순순히 따라가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 예수님은 그의 순종 위에 은혜를 베푸시고 이방인 선교의 큰 꿈을 이뤄내는 도구로 사울을 바울로 바꾸시는데 성공한다. 그때 바울의 이성이 작동해 상식적인 생각으로 비통해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더라면 역사는 엄청난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으리라.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하에 큰 복을 받았지만 그의 선택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살아오는 동안 나의 다메섹은 언제였을까? 6.25 한국전쟁 중 아버지가 납북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라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어리니까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지나갔다. 대학 1학년 때 고시 공부를 너무 일찍 시작했다가 갑자기 심장이 온 가슴을 다 덮을 정도로 커지는 심장비대증으로 사경을 헤맬 때가 어쩌면 첫 번의 다메섹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그때 신앙이 있었더라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았을지 모르겠으나 인과응보와 윤회전생을 믿는 불교도 였기에 고집을 꺾지 않고 또 공부하고 들어앉았다가 수년이나 고생만 하고 고등고시는 원서 제출도 못 해보고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많은 사람들의 전도를 받았건만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38살이 되어서야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다메섹이다. 토기장이의 비유(롬 9:21)에서 온전히 교만은 박살났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