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이 일생] 선교 140주년 선교유산 탐방 : 서상륜과 새문안교회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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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최초 한국인 담임목사요, 제2대 담임목사인 차재명은 심방 사역, 주일 학교, 성가대를 시작한 분이다. 

새문안교회와 소래교회는 함께 부흥을 경험하며 예배당을 넓혀가며 건축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에서의 건축의 원리, 건축의 정신, 봉헌과 헌신의 원리를 남겼다. 당시 교인들은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건축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봉헌과 헌신으로 주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래교회는 건축부지를 마을에서 대대로 무당들이 굿을 하던 당골로 정하고 구입한다. 이를 알게 된 전국의 내로라하는 무당들이 모여 큰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교회 청년들은 도끼와 톱 등 연장을 들고 당골로 쳐들어가니 무당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가고 청년들은 신목 주(株)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소래교회와 새문안교회는 그때부터 서로 헌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하고 먼저 건축을 한 소래교회는 서울의 교회가 먼저 완공되어야 한다고 결의하고 *상량(上樑)예식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름 들어 알만한 초기 새문안교회를 섬긴 교인들로는 다음과 같다. 평양신학교 제1기 졸업생 7명 최초 안수목사 서경조가 동사목사로 섬겼다. 

아버지는 정치 사건으로 귀양을 가고 어머니가 곧바로 별세해 어린아이가 혼자 어렵사리 살던 ‘변갑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가 병들자 언더우드는 그를 치료해 주고 양아들로 삼아 공부를 가르치고 유학을 보낸다. 그가 바로 언더우드의 비서, 임시정부 외무총장, 학무총장, 김구와 함께 신탁통치를 반대하던 김규식이다.

소래교회 출신으로 대한애국부인회장, 정신여고 이사장을 지낸 김순애가 새문안교회 출신이요, 그녀는 김규식의 아내가 된다. 임시정부 수립 발기인 장붕 장로도 있다. 

당시 최고의 교회 프로그램은 천자문, 사서삼경을 외우듯 하는 성경 암송이었다. 신약성경을 다 외웠다고 전해지는 송순명 장로는 별명이 송신약이었다. 송순명은 도산 안창호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남궁혁 박사의 부인 김함라,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연세대 부총장 김명선, 고황경 박사의 조부 고학윤 등이 초기 새문안교회 성도들이었다.

*상량 :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림.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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